[한경데스크] 모피아, 하수인 그리고 카르텔

입력 2013-11-20 21:26
백광엽 금융부 차장 kecorep@hankyung.com


“현재현 회장이 로비력 하나만큼은 최고였습니다. 동양사태는 그의 뒤를 봐준 모피아(Mofia·금융정책 관련 공무원집단)와 모피아의 하수인으로 전락해버린 금융감독원의 합작품입니다.”

동양그룹의 몰락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의 개탄이다. 그는 “‘서둘러 대처해야 한다’는 보고가 3년 전부터 이어졌는데도 뭉개버린 모피아와 그들에게 순치된 금감원 지도부의 무소신이 사달을 냈다”며 뒷얘기를 풀어냈다.

모피아의 '동양 감싸기' 8년

듣고 나서 찬찬히 복기해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주주 결격사유가 있던 동양증권이 기업어음(CP)을 본격 취급할 수 있도록 2005년 신탁업을 인가해준 게 시발점이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시절의 일이다. 2008년까지였던 동양증권의 종합금융업 면허가 별 이유 없이 3년 연장된 것도 그 무렵이다.

2007년 자본시장법을 만들면서 증권회사에 계열사 CP 판매를 허용해준 건 더 노골적이다. 초안에 들어 있던 ‘계열사 CP 판매 금지’ 조항이 최종 법안에선 쏙 빠졌다. ‘거의 유일한 수혜자가 동양그룹’이라며 반대한 금감원 실무자들은 ‘잔말 말고 따르라’는 상부의 협박성 지시를 들어야 했다.

모피아는 8년 넘게 동양을 싸고돌았다. 그 과정에서 소신대로 버틴 감독당국자들은 한직으로 밀렸다. 눈치 빠르게 하수인을 자처한 이들만 승진가도를 달렸다. 그렇게 금감원은 순치됐다.

헛발질은 동양의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금융당국은 지난 9월 동양의 방계그룹인 오리온 대주주에 동양그룹 지원을 압박했다. 성사돼 봐야 겨우 몇 달 더 버티는 정도인데도 오리온을 끌어들인 건 ‘동반몰락’의 길을 권한 무리수였다. 실패가 예견된 카드이기도 했다. 작년에도 같은 요청이 있었고, 그때도 오리온은 면밀히 검토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게 정통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경제전반으로 파고든 카르텔

해법을 결단할 마지막 기회는 연초 새 정부 출범 직후였다. 하지만 곪을 대로 곪은 동양을 넘겨받은 신제윤 금융위원장-최수현 금감원장,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주형환 경제금융비서관 라인은 시간을 끌며 책임회피적 태도로 일관했다. 권혁세 전 금감원장은 얼마 전 ‘관료들이 보신주의에 빠졌고, 금융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후배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동양 시한폭탄’을 작동시킨 당사자로서 반성이 먼저”라는 냉소적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모피아와 하수인들은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카르텔로 진화 중이다. 서울대 법대 졸업, 검사 출신인 현 회장이라지만 사회 중심부를 장악한 거미줄 네트워크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책까지 주무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관료사회가 카르텔에 포섭된 마당에 금융회사들이야 말해 뭐할까. 일반투자자들이 고리에 현혹돼 동양 CP로 몰려다닌 지난 7월 하나은행은 소리소문 없이 여신 3000억원을 전액 회수했다. 카르텔 언저리에서 ‘떡고물’을 챙긴 셈이다.

동양 피해자들이 폭력 성향을 보이는 건 아마도 ‘그들만의 카르텔’을 직감한 뒤 느낀 울분과 좌절감 때문일 것이다. 동양사태 2개월여,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거대한 상대와 마주하고 있다.

백광엽 금융부 차장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