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입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대출받고 며칠이 지난 뒤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는 법안까지 국회에 제출되고 있다.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금융소비자 보호 기본법안’은 금융소비자가 신용대출이나 담보대출 계약서류를 발급받은 날로부터 7일 안에 위약금이나 손해배상 없이 이를 취소할 수 있는 대출계약 철회권을 담고 있다. 대출 여부를 다시 생각해보거나, 더 좋은 조건의 상품을 탐색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금융회사와 고객 간에는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금융소비자 보호가 필요하다는 대원칙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금융 강국인 미국만 해도 JP모간의 부실상품 불완전판매에 대해 벌금을 무려 130억달러(약 13조7000억원)나 물릴 정도로 금융사 측의 엄격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국내에선 회사채, CP 등의 불완전판매 논란이 잇따랐고 키코 사태에서 보듯이 법원도 소비자 보호에 미온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 목적이 타당하더라도 금융의 원리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수신상품이나 보험계약도 아닌 대출에까지 철회기간과 철회권을 준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불가피한 선의의 고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 카드사 등에서 대출받아 일시적인 급전 융통, 잔액증명 등을 해결한 뒤 취소해버리는 구체적 상황을 예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칫 각종 사기수법에 악용될 수도 있다. 금융은 시간의 가치를 기초로 성립하는 산업이다. 법안에선 대출 철회 때 경과일수만큼 이자를 물린다고 하지만 이 때 발생하는 담보대출 설정비, 자금운용 미스매치로 인한 손실은 고스란히 금융회사 몫이 된다. 당연히 그 손실은 모두 다른 고객에게 전가된다. 법과 제도가 도덕적 해이의 방패막이가 돼서는 곤란하다. 강석훈 의원은 경제학자 출신이다. 정치를 하다 보니 잠시 경제원리를 잊었다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