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쟁 볼모된 예산 심사

입력 2013-11-17 21:02
수정 2013-11-18 05:27
이태훈 정치부 기자 beje@hankyung.com


[ 이태훈 기자 ] 국회가 2012회계연도 결산안을 법으로 정해진 시한(9월 정기국회 개회 이전)이 석 달 가까이 지났음에도 처리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장외투쟁, 국회 일정 보이콧 등으로 심사가 지연됐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올해 결산안 처리가 역대 가장 늦은 시점에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결산안 처리가 가장 늦었던 것은 조기결산심사제가 도입된 첫해인 2004년으로, 12월8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8년에는 11월24일에 처리했고, 그 이외에는 늦어도 10월 안에는 결산안을 통과시켰다. 결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새해 예산안 처리도 그만큼 지연되는 게 일반적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결산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뒤 예산안 심사를 위한 계수조정소위원회를 구성한다.

국회는 지난해 말 헌정 사상 처음으로 예산안을 연내에 처리하지 못하고 해를 넘겼는데, 올해도 이 같은 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야가 노무현 정부의 남북한 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그동안 국정원 개혁 이슈 등을 예산안 처리와 연계시키겠다고 강조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야당이 만족할 만한 약속을 내놓지 않으면 모든 국회 일정이 ‘스톱’될 것이란 예상도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준(準)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지금까지 준예산이 편성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올해 예산안의 경우 해를 넘겨 처리되긴 했지만 그 시점이 1월1일이었기 때문에 준예산을 편성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현재 여야의 대치 정국을 감안하면 내년 예산안이 해를 넘겨서도 장기간 처리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비, 승인된 국책사업 비용 등을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다. 하지만 신규 사업은 비용 편성이 불가능하다. 정쟁으로 준예산 편성까지 가게 된다면 정치권은 민생을 파탄냈다는 역사적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것이다.

이태훈 정치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