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현 기자 ]
1986년 봄, 경북 영양군 출신의 한 청년이 서울 여의도 삼덕빌딩 앞에 섰다. 당시 증권업협회가 소유하고 있던 삼덕빌딩은 증권업계의 중심으로 통했다. 신입사원 조강래 사원은 이 빌딩에 입주한 동남증권(현 하나대투증권)에서 ‘증권맨’으로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초년병 시절부터 마음 속에 최고경영자(CEO)의 꿈을 품었다. 이직 제안을 받을 때마다 “내 꿈은 CEO인데 이직하면 CEO가 될 수 없지 않느냐”며 거절했다.
26년 뒤 이 청년은 CEO가 되어 이 빌딩으로 돌아왔다. 조강래 IBK투자증권 대표(사진) 이야기다. IBK투자증권은 지난해 63빌딩에서 삼덕빌딩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조 대표는 “아직도 이 빌딩에서의 젊은 시절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IBK투자증권에서 만난 조 대표의 얼굴에는 여전이 청년의 열정이 묻어있었다.
올 5월 연임한 조 대표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증권업계는 유례없는 불황을 겪고 있다. 설립 6년차인 IBK투자증권은 신생 증권사에서 중견 증권사로 도약하는 단계다. 57세인 조 대표 역시 ‘젊은 사장’ 대열을 벗어나 ‘증권업계 큰 형님’ 쪽에 더 가까워졌다.
조 대표의 별명은 소방관과 구원투수. 적자에 허덕이던 비앤지증권과 유리자산운용 수장을 맡아 흑자로 돌려놨다. IBK투자증권 역시 지난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3년 만의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도 성적이 좋다.
조 대표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 수익모델을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조 대표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사양산업은 있어도 사양기업은 없다”
“최고경영자로서 고민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조 대표는 “단언할 수는 없지만 업계가 구조적인 불황에 진입한 게 아닌지 우려가 된다”고 털어놨다. 지수가 상승해도 거래량이 늘지 않는 이례적인 상황이라는 것. 최근 여의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부는 데 대해 "수익 구조가 날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고육책이 아닐까“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조 대표는 “IBK투자증권엔 구조조정이란 없다”고 못 박았다.
“사양산업은 있어도 사양기업은 없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입니다. 증권업계도 차별화된 사업영역을 발굴에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IBK투자증권만의 특색을 찾아 ‘선택과 집중’ 전략을 썼다. 중소벤처기업 자금조달을 위한 코넥스시장에 신경을 기울였다.
IBK투자증권은 코넥스시장 11개 지정자문인 가운데 가장 많은 기업의 상장을 유치했다. 현재 6개 기업을 상장시켰다. 연말까지 총 10개를 추진할 예정이다.조 대표는 “내년까지 20개 상장이 목표” 라며 “코넥스에서 코스닥 시장으로 옮겨가는 첫 기업도 내년에 만들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중소, 중견기업을 위한 기업금융 서비스 제공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리테일 부문은 주식 중개 중심에서 채권, 금융상품 판매 중심으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또 지속성장을 위해 해외진출은 필수라는 생각입니다. 글로벌 딜도 추진 중입니다.”
지난달엔 일본 도쿄에 첫 해외사무소를 열었다. 어려운 시기에 일본시장 개척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경제는 약 10년의 차이를 두고 일본 경제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기 불황을 극복하고 최근 다시 회복세인 일본 경제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현재 일본의 ‘증권가’ 분위기는 한국과 많이 다릅니다. ‘근무강도가 혹독하다’ 싶을 정도로 증권맨들의 일상은 바쁘게 돌아갑니다.”
조 대표는 국내 자산관리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일본 증권사의 노하우와 선진금융 기법을 벤치마킹할 계획이다. 또 사무소를 통해 일본 금융기관 네트워크를 구축해 새로운 사업기회도 모색할 예정이다.
조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열정’과 ‘치열’. 최근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하며 ‘치열하게 살자’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흑자 경영에 특별한 비결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열정을 갖고 정도(正道)와 투명경영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을 뿐이죠. 젊은 직원들도 주인의식을 가졌으면 합니다. CEO란 꿈은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1956년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난 조강래 대표는 대구 경북고,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제일제당에 입사한 뒤 1986년 하나대투증권으로 자리를 옮기며 증권업계에 입문했다. 유화증권 상무이사 등을 거쳐 유리자산운용과 산은자산운용 대표, 비앤지증권 대표에 올라 흑자 경영을 이어갔다. 2011년 IBK투자증권 대표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직원들에게 일본항공(JAL) 회장이었던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를 선물했다. 한경닷컴 이지현 기자 edi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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