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과 루치안 프로이트(1922~2011)는 모두 특별한 가문 출신이다. 베이컨은 17세기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직계 후손이고 프로이트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손자다. 이들은 20세기 표현주의 회화의 거장답게 수많은 화제로 미술사를 수놓았지만 성공까지의 여정은 판이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건너간 베이컨은 천식과 동성애, 방랑 등으로 굴곡진 세월을 보냈다. 어머니와 누이의 속옷을 입은 걸 아버지에게 들켜 쫓겨났고,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림 또한 독학으로 배워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십자가 책형의 기본 형상을 위한 세 개의 습작’으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50대 이후에는 커다란 세 폭짜리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작품 속의 얼굴은 대부분 뭉그러진 고깃덩어리 같았다.
이에 비해 독일 태생의 프로이트는 나치즘을 피해 영국으로 귀화한 뒤 센트럴 미술학교와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미술을 정식으로 공부했다. 31세 때 브리튼 페스티벌에서 화려하게 입상한 직후 세계적인 미술가 반열에 들었다. 사람과 식물을 워낙 정밀하게 묘사해 극사실주의 화가로도 불린 그는 가족을 모델로 많이 삼았다. 친구와 동료화가들도 자주 그렸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서로 친했던 둘은 각자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우정을 나눴다. 그저께 1억4240만달러(약 1528억원)로 세계 미술품 경매 신기록을 세운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은 베이컨이 50세 되던 해 그린 친구의 초상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뭉크의 ‘절규’(1895)가 세운 1억1992만달러(약 1286억원) 기록을 깨며 ‘절규보다 더 센 그림’으로 등극했다. 나무 의자에 앉은 프로이트를 세 폭에 나눠 담은 가로 147.5㎝, 세로 198㎝의 대작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것을 로마 수집가가 모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 이렇게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가 그림 속 인물들의 머리를 분할해 그림으로써 피카소의 입체파 흐름을 20세기 후반까지 계승한 점을 높이 산다. 그림이 세 폭이어서 단일 작품보다 비싼 것 또한 한 요인이다. 게다가 이 괴팍한 화가의 작품 수는 많지 않다. 원하는 미술관과 컬렉터는 많은데 작품이 적으니 값이 뛸 수밖에. 경매회사들이 “20세기를 상징하는 작품”이라며 극찬하는 걸 보면 앞으로도 더 오를 모양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