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 고연희·김동준 외 지음 / 태학사 / 551쪽 / 3만5000원
[ 정석범 기자 ]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사도세자는 그림으로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그가 그린 것으로 전해오는 개 그림은 두 마리 강아지가 어미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미는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이 그림은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부왕 영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기록으로는 접할 수 없는 사도세자의 마음이 감상자에게 전해진다.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는 역사·철학·문학·회화·복식 등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전공한 32명의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그림으로 읽는 한국문화사다. 글로써 파악하기 어려웠던 문화의 씨줄과 날줄을 그림을 통해 복원하기 위한 시도다.
책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1부 ‘마음’에서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정과 내면을 들여다보고 2부 ‘감각’에서는 인간적 욕구와 취향을 살핀다. 3부에서는 사연을 간직한 작품들과 만나며 4부에서는 그림 속에 똬리를 튼 국가의 문제를, 5부에서는 조선의 울타리를 넘어 동아시아로 향한 선인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추사 김정희는 ‘영영백운도(英英白雲圖)’의 황량한 산수 그림으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퇴계 이황이 게 그림을 펼쳐 놓고 시를 읊조린 것은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헛헛함을 그렇게라도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옛 사람의 마음 표현 방식을 읽게 한다. 조선시대 옥좌의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가 일제 강점기에 ‘봉황도’로 대치된 것은 일제의 조선 격하 의도 때문인데 이것이 오늘날 대통령의 상징이 된 것이라는 지적, 일제가 한반도 지형을 호랑이 대신 토끼 모양이라고 유포한 것은 조선인의 기상을 꺾으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풀이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읽는다.
이미지는 문서 다큐먼트와 함께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대표적인 문화적 지층이다. 그간 미술사 전공자들만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해온 이미지가 한국학 전반을 아우르는 학자들에 의해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당대인의 따뜻한 마음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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