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포퓰리즘 뉴욕 시장의 딜레마

입력 2013-11-13 21:32
수정 2013-11-14 05:27
유창재 뉴욕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 뉴욕=유창재 기자 ]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임금인상 없이 일해 왔다. 관리비를 내기 위해 신용카드를 써야 할 정도다.”(해리 네스폴리 뉴욕시 공무원노조 위원장) “돈이 나오는 마법 주전자 따위는 없다. 최악의 경기에서도 공무원들을 해고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캐스웰 홀로웨이 뉴욕시 부시장)

지난 5일 선거에서 20년 만에 민주당 출신 뉴욕시장으로 선출된 빌 더블라지오가 고통스러운 난제를 안고 시정을 시작하게 됐다. 자신의 최대 지지세력인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안 들어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 시 공무원 노조가 지난 몇 년간 동결한 임금 상승분을 한꺼번에 소급해서 지급하라고 요구하면서다.

뉴욕시 공무원노조의 152개 지부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임금 협상을 타결시키지 않았다.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이 낮은 임금 인상안을 제시하면 매번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 차기 시장과 협상하면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진보적 성향의 더블라지오 시장이 당선되자 노조의 기대감이 높아진 배경이다.

뉴욕타임스는 “노조의 계산은 착오였다”고 평가했다. 노조 요구대로라면 최소 70억~80억달러를 지급해야 하지만, 시에 그럴만한 돈이 없다는 것. 뉴욕시는 내년에 2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퇴직 공무원들의 연금과 건강보험료로 들어가는 돈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다. 시는 올해 퇴직 연금에 82억달러, 건강보험에 63억달러를 각각 기여해야 한다.

재정 전문가들은 더블라지오 시장이 노조 요구를 들어주면 그의 핵심 공약인 무상 유치원 교육은 물론 치안, 공원 관리 같은 기본적인 예산 집행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뉴욕시 최대 세원인 금융업계는 여전히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써야 할 돈은 점점 불어나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7월 185억달러의 부채를 갚지 못해 파산 보호를 신청한 디트로이트를 연상시킨다.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당선된 새 시장과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공무원 노조가 세계 최대 도시 뉴욕을 제2의 디트로이트로 전락시킬지 지켜볼 일이다.

유창재 뉴욕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