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04 모금·나누米…신선설농탕의 행복한 나눔
형편 어려워져 들어온 직원들, 자발적 기부로 자존감 회복…기부금액 매년 4억~5억원
손님이 밥 적게 주문하면 아프리카 결식아동 지원도
기부를 통해 사랑 주면 행복이 몇 배로 돌아옵니다
[ 강경민 기자 ]
1992년 대학을 막 졸업한 27세 청년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설렁탕 집을 운영하게 됐다.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가업을 물려받으라는 아버지 말씀을 뿌리칠 수 없었다. 청년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그릇 닦기와 밥 짓기였다. 사업을 물려받기 싫어 공대에 진학한 그에게 설렁탕 장사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 잠원동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설렁탕 집은 20여년 후 매장 수만 42개로 늘어났고, 5개의 브랜드를 보유한 대표적인 외식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오청 (주)쿠드 대표(48) 얘기다. 쿠드는 현재 주력 브랜드인 ‘신선설농탕’을 비롯해 고급 한정식 ‘시·화·담’, 구이전문점 ‘우소보소’, 한정식당 ‘수련’, 인테리어 브랜드 ‘이노데코’ 등 5개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2009년 40%가 넘는 시청률 속에 방영됐던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모델이 바로 신선설농탕이다. 13일 서울 인사동 신선설농탕 매장에서 만난 오 대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했다. 기부와 나눔에 대한 욕심이다.
◆“기부로 직원들 자존감 되찾아”
오 대표는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17번째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의 부인인 박경원 (주)쿠드 이사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오 대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부를 꾸준히 한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식당업을 하신 부모님은 업종을 20번 바꾸셨습니다. 20번 망한 셈이죠. 그럼에도 부모님께선 평생 기부를 게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노숙자들이 식당에 와서 구걸하면 밥뿐만 아니라 돈까지 쥐어 주셨죠.”
신선설농탕의 기부 활동도 널리 알려졌다. 사랑의 밥차, 1004 모금 운동, 오픈매출기부 등 사회공헌활동이 10개가 넘는다. 살아오면서 몸속에 체화한 기부 DNA 영향일까. 오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2007년 말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직원 설문조사를 했어요. 예상과 달리 기부와 봉사라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더군요. 외식업 특성상 주부 직원이 많은데, 이들이 회사에 들어올 때는 대부분 형편이 어려울 때죠. 수많은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자존감이 떨어져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기부와 봉사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되찾고,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는 게 직원들 속마음이었죠.”
신선설농탕 기부활동 대부분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오 대표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기부에 대한 욕심을 키웠다고 했다. 오 대표에게 아너 소사이어티를 소개해 준 사람도 매장 직원이었다.
◆“기부는 행복한 의무”
신선설농탕은 최근 외식업체 특성을 살려 나누미(米) 캠페인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밥을 적게 먹는 고객들에게 일반 공깃밥보다 30% 정도 양이 적은 ‘나누米’를 주문하면 ‘나누米’ 쿠폰을 지급하고, 쿠폰을 기부하면 장당 60g의 쌀을 모금회를 통해 아프리카 결식아동들에게 전달하는 독특한 기부활동이다.
오 대표와 신선설농탕이 1004 모금운동, 나누米 캠페인 등을 통해 기부하는 규모는 연간 4억~5억원에 달한다. 연매출 500억원이 넘는 회사라도 선뜻 내놓기가 부담스러운 액수다. 오 대표는 이에 대해 “기부는 행복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나누고, 직원들이 행복한 기업이 목표입니다. 기부를 통해 사랑을 주면 행복이 몇 배로 돌아옵니다. 회사 이미지가 좋아서 입사했다는 직원들도 많죠. 이직률이 높은 외식 업종이니만큼 직원 만족도를 높여 인간적인 직장, 오래 근무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 대표는 설렁탕이야말로 대표적인 나눔 음식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임금이 선농단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는데, 그때 쓴 고기 뼈를 고아서 만든 음식에서 유래된 게 설렁탕입니다. 설렁탕 집은 모든 사람에게 만만해야 합니다. 서민들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죠.”
그는 앞으로도 7000원짜리 설렁탕처럼 작지만 따뜻한 나눔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액의 통큰 기부는 아니더라도 직원들과 함께 생활 속에서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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