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과정, 열정보다는 돈?
# 몇달 전까지 아나운서 준비를 했던 직장인 이 모씨(24) "'열정만 있으면 된다' 그 말을 믿었죠. 안 다녀본 아카데미가 없고, 청담동 유명 미용실은 찾아다녔죠.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 브라운관에 내 얼굴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이유요? 시험 볼 때마다 선생님들이 리스트를 알려줘요. 한 번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할 때마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비용으로 30만 원 가량이 들어요.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도 비용적인 면에서 엄청난 부담감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 기상캐스터 준비 중인 여대생 장 모씨(23) "방송 아카데미를 다니지 않고 준비할 수 있을까요? 좋은 학원에서 선생님들에게 잘보여야 한 번이라도 더 추천을 받을 수 있어요. 방송은 능력보다는 경험이 우선이거든요. 추천제도도 학원 자체 오디션에 합격해야 하기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요. 가끔 인맥이 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죠. 떨어질 때마다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예요."
평균 2000대 1의 경쟁률, 이는 취업 준비생들의 방송직 지망 열기가 과열되었다는 것을 가늠할 수있다. 이에 인적·경제적 부작용이 우려된다.
KBS, MBC, SBS 지상파 3사 등 아나운서를 필요로 하는 채용인원이 소수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가는 길은 매우 좁다. 아나운서 준비생들은 방송 아카데미가 필수 코스가 된 듯, 지푸라기를 잡는 심경으로 이곳저곳을 전전하고 있다.
방송 아카데미는 3개월~9개월 교육과정으로 나뉘며 카메라테스트, 면접 등 실기를 위주로 아내운서 대비 교육을 한다. 여기에 시사상식, 논술, 영어면접 등이 공채 시험에 포함되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2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강남, 신촌에 위치한 학원을 방문해보았다. 3개월 과정의 기본 코스가 300만원. 일주일에 세 번 3시간씩 진행되며, 한 클래스에 10~13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는다. 채용시기에는 소수의 학생을 모아 이미지 코칭을 해주는 공채반 과정을 밟는다. 한 달 과정에 70~100만 원 사이다. 또 아카데미 원장에게 일대 일 코치를 받게되면 부르는 게 값이다.
뿐만 아니라, 방송사 대부분은 지원시 얼굴·전신 프로필 사진, 영상 등을 요구한다. 학원과 연계되어있는 고급 스튜디오에 비용을 문의해보니 30만 원부터 5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또한 대다수의 수강생들은 아카데미를 다니는 동안 성형수술의 유혹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토로한다. 카메라 앞에서 매 시간 강사의 평가를 받는데 '치아가 고르지 않다' '졸린 눈 같다' '인상이 좀 세다' 등 사소한 지적에 성형외과를 찾는 이들이 늘고있는 추세다. 한 아카데미는 피부과와 성형외과, 치과를 홍보하는 팜플렛 등 상업적인 연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강남에 위치한 A 성형외과 전문의는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치아교정이나 안면윤곽을 통해 화면에서 더욱 또렷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며 "C방송 아카데미 추천으로 왔다면 할인이 가능하다"고 거듭 권유했다. 비용은 600~1000만원 사이.
방송직 준비기간을 1년이라고 잡았을 때 최소 1500만 원에서 3000만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과거 방송에서 한 아나운서 응시자가 32번의 시험을 보며 3200만 원을 투자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돈 없으면 아나운서가 못 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방송 3사를 제외한 다수 아나운서들은 비정규직이다. 기상캐스터, 스포츠 아나운서들은 계약직으로 고용돼 고용 불안이 심각한 수준이며, 지방 방송사 경우 2년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후 프리랜서로 전향, 대부분 비용대비 수입이 넉넉치 않다"고 밝혔다.
김현진 기자 sjhjso12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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