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갈등 탓 경제손실 눈덩이
갈등해소 경험·교훈 축적도 안돼
관련 법제도 인프라 확립 시급해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최근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갈등과제 추진현황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국무조정실이 진주의료원 문제와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 등을 ‘갈등 완화’로, 과학비즈니스벨트 부지 매입비 분담 문제와 제주 민·군 복합항 건설 갈등을 ‘갈등 해소’로 각각 분류했으나, 이들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부담이 컸을 것이다. 도처에 갖가지 갈등들이 빈발하고 또 악화되고 있는데 정부의 노력이 약발을 받지 못하니 조바심이 생길 만도 하다.
공공갈등이 사회적 수인한도를 넘었고 그로 인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따른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10년 자료를 토대로 한국의 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 중 터키 다음인 두 번째로 높다고 보고했고,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이 OECD 평균보다 심각하기 때문에 발생한 경제적 비용을 82조원 내지 246조원으로 추정한 바 있다. 선진국 도약을 위해 공공갈등의 효과적 해소가 급선무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실 갈등공화국이란 오명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사패산 터널 사례처럼 정부가 중재·조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한 경우도 있었고, 공모제와 경쟁적 주민투표로 방폐장 입지를 결정하거나 미군기지 이전 사례처럼 주민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어나간 경우, 울산 사례처럼 시민배심원제를 통해 음식물쓰레기처리시설 입지를 결정한 경우도 있었다. 또 새만금간척사업이나 천성산 고속철 사례처럼 대법원까지 가서 판결로 끝을 본 경우도 있었다. 교훈은 충분하다. 어쩌면 되뇌는 게 진부할 정도다. 가령 갈등 당사자들과 신뢰관계를 쌓는 게 중요하고 자율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대안을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든가, 이해관계자의 실질적 참여와 공정성 개방성 등 절차적 정의를 보장해야 한다는 등 낯익은 얘기들이다.
대규모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들이 사법부 판결로 종국적 해결을 보는 경향이 나타난 점도 주목된다. 소송의 문호를 개방해 공공갈등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갈등에 관한 이 모든 값진 경험과 교훈들이 잘 축적되지 않고 쉽사리 사장되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다. 갈등연구의 세계적 권위인 서스카인드 교수도 갈등해결과정에서 얻은 교훈들이 쉽게 소실되고 확산·계승이 어렵다고 토로한 바 있다. 고통스런 시행착오를 겪고도 유사한 갈등이 반복되거나 악화되는 것은 바로 그 교훈을 담아 공유하고 계승·확산시킬 법제도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공공갈등 해결을 위한 법제화 노력이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쳐 아직까지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회의원 자신들이 미온적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사실 공공갈등은 대부분 국회가 해결할 문제여서 이를 행정부 소속 갈등관리기구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정서가 만연하다. 하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공공갈등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거나 스스로 갈등당사자 어느 한쪽에 가담해 지역 이해를 대변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기 일쑤다. 외국에 선례가 있느냐, 갈등관리기구나 지원센터 설치가 ‘작은 정부’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등 문제를 제기하지만 실은 스스로 해결하긴 마뜩지 않고 그렇다고 남에게 넘겨주기도 싫다든가, 아니면 갈등관리 인프라 구축이라는 성공트로피를 상대 당이나 정부에 넘겨주기 싫다는 심사가 아닌가 의심이 든다. 갈등관리법 제정이 역대 정부에서 모조리 무산된 배경이 그러했고 이명박 정부 말기 제기된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한 공공토론 도입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대통합 공약 덕인지 몰라도 ‘갈등관리기본법’ ‘국가공론화위원회법’ ‘국책사업국민토론위원회법’ 등 관련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눈치보기나 모색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되고 어떻게든 결실을 맺어야 할 시점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 조속히 법안을 심의해 해묵은 숙제를 마치기 바란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