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 여행]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 사회에 자생적 질서 만들어

입력 2013-11-01 17:09

(41) 자유주의 경제학 창시자 애덤 스미스

17세기 들어 상업 활동이 활성화되면서 전통 관습 봉건주의 등 중세 시대의 갖가지 속박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유로운 상업사회의 등장을 방치하면 빈곤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정부는 시장 개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끌 능력이 없으니 경제를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는 게 번영의 길이라고 역설한 인물이 영국의 도덕 철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다.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총명하고 학구적이었던 그가 일생 탐구한 건 ‘인간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어떻게 사회질서가 가능한가’라는 거대 담론이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윤리학 법학 경제학 등을 두루 섭렵한 스미스가 발견한 게 바로 ‘동감의 원리’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다른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게 마련인데, 그 같은 역지사지를 통해 타인의 느낌과 일치한다고 여기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는 행동원리를 말한다. ‘너 같았어도, 또는 나 같았어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식으로 행동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동감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은 받고 비난은 피하려는 본능적 욕구 때문이라는 게 스미스의 설명이다. 주목할 대목은 동감은 사람들의 결속과 통합을 가능하게 해 사회가 스스로 질서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동감은 한 번에 형성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학습과 반성 등 경험을 축적하는 사회적 과정이라는 스미스의 인식도 흥미롭다.

지적인 재치가 넘쳤던 스미스는 동감의 원리를 통해 시장경제의 도덕적 기초를 설명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이타적인 행동은 항상 동감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상가(喪家)에 와서 슬피 우는 걸 누가 동감하겠는가. 그래서 이타적인 행동은 인간관계의 친숙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게 스미스 논리다.

상업사회는 친숙도가 비교적 낮은 사람들이 분업하는 거대사회이기에 그 속에서 이기심이 지배한다고 스미스는 인식했다. 그렇지만 인간들은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동감과 인정을 받고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절제하면서 생산적인 행동을 만들어 낸다. 고객들을 배려하고 친절도 베풀고 해고도 멋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업사회에서 인간들은 상호 소통 속에서 다양한 덕(德)을 개발한다고 스미스는 주장한다. 그런 덕 가운데 백미는 정의의 덕이라고 말한다. 약속이행, 재산권 존중, 동의에 의한 재산이전 등과 같이 정의는 인간들이 제 것을 챙기기 위해 사용하는, 폭력 사기 약속위반 등과 같은 불의(不義)를 막는 규칙이다. 불의는 분노와 보복을 일으키고 그래서 누구나 쉽게 동감할 수 있었기에 그런 정의의 규칙이 생겨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스미스는 이타심과 정의가 사회질서 유지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타심은 건축물의 장식품과 같아 있으면 좋지만 없이도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큰 문제가 안되지만 정의는 건축물의 기둥처럼 그게 무너지면 사회가 성립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의의 규칙은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위한 도덕적 기초라는 뜻이다. 시장은 나침반 역할을 하는 가격의 도움을 받아 고용, 성장, 번영 등 다양한 경제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질서를 만들어간다고 스미스는 강조한다.

소비가 모든 생산의 유일한 목적이고 그래서 생산의 방향을 무의도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조종하는 게 소비자 역할이라는 그의 주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비자 이익을 증진하는 경우에만 생산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소비자주권론의 창시자도 스미스다.

그런 주권의 효과적 실현 방법이 자유경쟁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자유경쟁에서 새로운 분업 가능성과 신상품, 신기술 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경쟁은 근면과 자발성도 북돋아준다. 스미스는 기업이 크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시장 경쟁을 통해 저절로 해결된다는 설명이다.

스미스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강조했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면 시장 내 여러 관계가 헝클어져 자생적으로 질서가 형성·유지되는 과정이 파괴되기에 국가 역할은 제한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불의를 막고 정의를 지키는 게 국가 제일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법이 필요한데 스미스가 강조하는 법의 성격은 정의의 규칙에 적합한 것이다. 효용 분배 공공복리 등과 같은 개념에서 도출한 법은 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법은 결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미스는 시장을 창조한 게 아니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것은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고 시장 작동에 필요한 윤리적, 법적 조건이 무엇인가였다. 그가 발견한 ‘자유의 시스템’에 대한 최대 적은 지적 자만에 빠진 정부라고 경고하면서 자유의 시스템이 간섭받지 않고 유지된다면 인류의 번영은 가능하다고 낙관했다.

민경국 교수

-------------------------------------------------------------------------------------

산업혁명 꽃 피워…'국부론'은 자유주의 경제학 교과서

스미스 사상의 힘

스미스가 연구대상으로 삼은 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희소성의 세계라는 숙명과 물질적인 부족을 개선하면서 타인과의 동감을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장 큰 공로로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형성, 대표적 자유주의 학파인 오스트리아학파에 영향을 미친 점이 꼽힌다.

스미스 사상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가는 그의 저서의 파괴력에서 입증된다. 저서《국부론》은 사회주의로 경도된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가 나오기 전까지 75년 동안 전 세계인의 경제학 지식의 원천이었다.

스미스는 보호무역을 비롯한 정부의 경제 개입을 옹호하던 유럽 중상주의와 세기적 대결을 벌였다. 상인이나 제조업자를 보호하는 정책은 생산의 최종 목적인 소비자를 희생시킨다고 꼬집었다. 중상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스미스 사상은 19세기 영국과 유럽대륙의 경제개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국에서는 대영제국이라는 ‘빅토리아 시대’를 탄생시켰고 유럽대륙에서는 산업혁명의 꽃을 피웠다.

인류의 번영이 가능하다고 낙관했던 스미스의 예측은 적중했다. 역사학자들이 입증하듯 18세기 이래 세계의 1인당 평균소득은 급증했다.

스미스 예측이 적중했던 이유는 인간의 자기계발 가능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에 대한 탁월한 통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통찰력을 입증해 주는 게 스미스 사상의 영향을 받은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와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의 성공적인 개혁이다. 규제 완화, 민영화, 정부지출 축소 등이 개혁정책의 주요 내용이었다.

레이건 정부는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스미스는 1980년대 대처 총리를 통해 영국에서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국제통화기금에서 구제금융을 받아 연명하던 영국경제를 구출한 것도 스미스의 ‘작은 정부’ 처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