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후쿠시마發 '탈원전 바람' 2년만에…세계 곳곳 '원전 유턴'

입력 2013-10-25 21:00
'값싼 전력'에 속속 회귀…英·美 수십년만에 신설
스웨덴, 폐기 정책 '철회'…핀란드·폴란드도 가세

이탈리아, 반대 많아 무산…스위스는 제로 정책 고수



“원자력발전소 1기면 풍력발전기 6000개를 대체합니다. 그래도 원전을 포기하란 말입니까?”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원전을 짓기로 결정한 남서부 힌클리포인트 현장에서 한 말이다. 캐머런 총리는 “풍력발전기 6000개면 25만에이커의 땅이 필요하고 엄청난 소음 때문에 주변에서 제대로 생활할 수도 없다”며 “반면 원전은 잘만 관리하면 안전할뿐더러 장기적인 일자리도 창출한다”고 강조했다.

원전 건설을 둘러싼 글로벌 논쟁이 뜨겁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반(反)·탈(脫)원전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영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하나둘 ‘복귀’를 선언하고 있다. 경제성을 놓고 보면 원전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사고가 났을 때 치명적일 뿐 아니라 폐쇄 뒤 처리 비용까지 고려하면 원전은 경제성도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둘 원전 회귀

영국은 힌클리포인트 원전 건설을 프랑스 EDF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맡겼다. 컨소시엄이 건설비를 전부 부담하는 대신 생산하는 전력을 ㎽당 92.5파운드에 정부에서 사주기로 했다. 화력발전소가 공급하는 전기값보다 훨씬 비싸다. 그럼에도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보다 훨씬 싸고 2만5000개의 일자리까지 만들 수 있어 경제성이 충분하다”는 게 영국 정부의 입장이다.

최근 영국 에너지 회사들이 전기, 가스값을 평균 10%씩 올린 것도 원전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야당도 잠잠하다.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는 에너지 회사들의 요금 인상을 ‘약탈행위’라며 비난했지만 원전 건설을 놓고는 여당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세계에서 해상풍력발전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을 만큼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적극적이다. 그럼에도 북해 유전·가스전의 고갈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발전만 놓고 보면 원전의 경제성은 압도적이다. 2010년 기준 원전의 전력생산 단가는 ㎾h당 39원이다. 액화천연가스(LNG)나 석유류(185원)의 20~30%, 유연탄(60원)의 3분의 2 수준이다. 700~800원에 육박하는 태양광과는 비교도 안 된다.

이 때문에 후쿠시마 사태 이후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들도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 프랑스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취임한 뒤 원전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최근 기존 원전의 수명을 40년에서 50년으로 늘렸다. 미국도 지난해 3월 조지아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2기씩 총 4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승인했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이후 33년 만에 새로 짓는 원전이다.

스웨덴은 단계적으로 원전을 폐기하기로 한 기존 계획을 철회하고 가동 중인 10기의 원전이 수명을 다하면 해당 지역에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다. 인도 역시 현재 3%의 원전 발전 비중을 2050년까지 25%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폴란드도 원전 2기 건설 계획을 발표해 이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경쟁하고 있다. 핀란드도 원전 4기를 지을 예정이다.

후쿠시마 사태의 당사자인 일본조차 원전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한 상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현재 점검을 위해 멈춘 원전 중) 안전하다고 확인되는 것들은 재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여론의 반대가 극심하지만 지난달 9321억엔에 달한 무역적자가 점점 심해지는 와중에 원전을 포기하면서 에너지 수입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1990년 이전에 지은 노후 원전 8기를 전부 중단시켰고, 2022년까지 운영 중인 17기 전체를 폐쇄하기로 할 정도로 ‘원전 제로’에 강한 의지를 보인 독일에서조차 변화 조짐이 보일 정도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과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 간의 연합정부 구성 협의에서 전력 부족 문제가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이 원전 폐쇄 계획을 철회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세계원자력협회는 2011년 9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후쿠시마 사태에도 2030년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이 2010년 364기가와트(GW)보다 70% 늘어난 614GW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폐쇄 비용 고려하면 경제성 없다”

물론 모두가 원전 회귀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는 전력 수요의 38%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지만 후쿠시마 사태 이후 신규 원전을 더 짓기 않기로 했다. 2034년까지는 노후 원전 5기도 폐기한다. 이탈리아도 2011년 25년 만에 원전 재도입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했지만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아 철회했다.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뿐 아니라 사후 처리 비용이 너무 커 경제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영국 트로스피닛드 원전은 1993년 철거작업을 시작해 지금도 진행 중이다. 2026년까지 발전 터빈과 원자로 주변 설비를 해체하고 2073년까진 방사선량이 충분히 떨어지도록 기다릴 계획이다. 최종 철거는 2083년에야 마무리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만 6억파운드(약 1조300억원)에 달한다. 미국도 지난 8월 폐쇄를 결정한 버몬트양키 원전을 60년에 걸쳐 철거하기로 했다. 한 기당 철거 비용만 5억달러(5300억원)다. 일본의 도카이 원전도 1998년 폐쇄작업을 시작해 2020년께에야 마무리할 예정이다. 단기간에 철거하는 방법도 있지만 방사성 물질 유출 위험이 있어 대부분 시간을 두고 방사선량을 줄이는 방법을 택한다.

남윤선 기자/도쿄=안재석 특파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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