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민단체와 학계, 업계 관계자들로 이뤄진 민관 워킹그룹이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을 만들어 정부에 권고했다. 2013~2035년 국가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는 2차 계획 초안은 5년 전 1차 계획 때 세워 놓은 원자력발전 비중 목표치(41%)를 22~29%로 대폭 낮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발전 단가가 싼 원전은 값싼 전기를 공급하는 핵심 전력원이다. 정부도 원전 건설을 계속 늘리는 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어난 사고, 국내에서 잇따라 터진 원전 비리와 원전 가동 정지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원전 비중 축소에 찬성하는 진영은 이런 불안 심리를 파고들고 있다.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경제적이지도 않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산업계에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 혜택을 준다면서 원전 정책과 연계한다. 원전을 계속 확대하면 전기를 적게 쓰는 고효율 설비의 도입과 새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원전 비중을 줄이고 전기요금을 올려야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다.
반면 원전 비중 축소에 반대하는 진영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나 신재생에너지로는 전력 공급을 늘리는 데 엄연히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LNG나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발전 단가가 비싸 원전보다 발전 효율이 낮다고 강조한다. 전력예비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원전만한 전력원이 없다는 것이다. 원전 불안감이 커진 것도 정부의 부실한 원전 관리 감독이 더 큰 원인이라는 논리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찬성 - 원전 줄이고 전기요금 올려야 국가 경제에 되레 도움될 것
산업통상자원부가 아직 자신있게 꺼내 놓지 못하는 전력 과다 수요 전망을 고려해도 원전 비중 22%는 2019년부터 시작되는 신규 원전 건설을 포기하겠다는 신호다. 29%는 2025년부터 원전을 새로 짓지 않겠다는 신호다.
원전 비중이 낮아진다고 해서 급격하게 전기요금이 오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인 분석이 아니다. 그럼에도 결론부터 말하면 전기요금은 오르는 게 경제를 도와주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전기요금을 물가 안정의 수단으로, 전기 다소비 산업의 경쟁력을 지탱해주는 수단으로 삼아왔다. 이는 왜곡된 에너지 수급 구조를 양산하고 새로운 에너지 산업의 성장동력을 저해했다.
한국은 미국 일본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의 에너지 수입국이다. 국토 면적이 큰 미국, 중국을 제외하면 일본, 독일, 한국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부존자원이 부족하지만 수출 의존형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다.
이런 점에서 당연히 효율이 높은 에너지 수급 구조를 가져야 할 텐데 한국은 일본, 독일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적으면서도 1인당 에너지 소비가 많고, 1인당 전기 소비도 많다. 효율이 떨어지는 산업구조에 기반하다 보니 같은 1000달러를 버는 데 에너지를 더 많이 쓴다.
국내 에너지 다소비 산업은 제조업 전체가 쓰는 에너지의 65%를 사용하지만 부가가치 생산 비중은 28%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저부가가치, 에너지 다소비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원가이하 산업용 전기요금…에너지 수급 구조 왜곡시켜
산업계를 위한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 정책은 한국전력이 지난 5년간 10조원에 이르는 누적 적자를 쌓게 한 원인 중 하나다. 한전의 부채는 2007년 말 약 21조원에서 2012년 말 95조원으로 불어났다. 한 업체는 전기로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드는데 2011년에 전기요금을 2281억원 내고 영업이익 200억원을 챙겼다. 국가가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으로 영업이익을 챙겨주는 셈이다. 이런 업체를 유지해 가는 정책이 경제에 도움이 될까.
세계적으로 새로운 에너지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각종 산업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이다. 태양광 산업은 2010년 81%, 풍력 산업은 25% 성장했다. 2011년에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20.4%)가 원전으로 생산한 전기(17.7%)를 앞질렀던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분야 고용은 38만2000명에 달했다. 원전 비중이 현재 한국과 같았던 당시 독일이 창출한 3만명의 10배가 넘는다.
하지만 싼 전기요금으로 전기 다소비 업체를 지원해주는 한국의 에너지 수급 구조로는 새 산업의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없다. 전기요금이 올라야 전기 소비효율을 높이는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성장동력이 생긴다.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적용하면 요금이 올라도 정작 내는 전기요금의 총량은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은 한국보다 전기요금이 4배 비싸다. 전기요금에서 발전과 송·배전에 드는 비용이 60%를 차지하고 40%가 각종 세금이다. 신재생에너지 보조금이 8.5%이고, 가스열병합발전 보조금이 0.5%다.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고효율 발전인 가스열병합발전에 재투자하고 있다. 2010년 한 해만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41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자했다.
한국에서 전기요금을 올리면 문제가 되는 대기업은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 전체 대기업의 제조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2% 미만이어서 대부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기요금 인상은 전기 다소비 업종에는 타격일 것이다. 벌써부터 다른 길을 찾았어야 할 자본들이 정부의 전기요금 보조만 믿고 투자를 게을리한 대가다.
이런 업종과 업체에 대한 지원과 구제 방침은 따로 마련해야 한다. 전체 에너지 수급 구조를 왜곡하고 새로운 경제 성장동력까지 묶어두는 전기요금 정책을 위해서 위험한 원전을 늘리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럼 전기요금은 얼마나 올리는 게 좋을까. 줄어든 원전 대신에 가스나 신재생에너지로 채우면 당연히 전기요금이 올라갈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상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두 배인 24.4%까지 끌어올릴 경우 2030년 실질적인 전기요금 상승률을 39.3%로 예상했다.
위험한 원전보다는 신재생에너지 산업 키워야
천연가스보다 비싼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해도 전기요금이 39% 오를 전망인데 원전 비중을 20%대로 유지한다고 전기요금이 얼마나 오르겠는가.
원전 비중을 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기요금이 오르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왜곡된 에너지가격 체계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 2차 에너지인 전기는 1차 에너지를 투입해서 그중 40%만 전기로 전환해서 쓰고 나머지는 버리는 방식이다.
그런 전기가 1차 에너지보다 싸니까 전기 소비가 급증할 수밖에 없고 전기가 필수적이지 않은 곳에 낭비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제조업에서 전기로 가열하고 난방하는 데에만 50% 이상의 전기가 낭비되고 있다. 1차 에너지와 2차 에너지 가격 역진 현상을 해소하는 데 최소한 50~80%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
2035년은 지금부터 22년이 지난 후다. 그때도 원전 비중이 20%대일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상 미래 비전이 부족한 전망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방사능 오염, 원전 비리 등으로 원전이 더 이상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이 될 수 없음을 우리 사회는 인지하고 있다. 20%대는 원전 산업과 전기 다소비 업체들의 저항이 반영된 수치다.
양이원영 <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 >
반대 - 전력 예비율 OECD 꼴찌…원전 안 늘리면 전력대란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의 가장 큰 차이는 원전 비중에 있다. 2차 계획 권고안의 원전 비중 목표치는 현재 발전원별 비중이 원전 26%, 석탄 31%, 가스 28%인 점을 고려하면 2035년까지 현 수준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사실상 이는 지난 정부가 내세운 원전 확대 정책을 전면 수정하는 것이다. 고리 원전 1호기 준공 이래 35년간의 원전 정책에 일대 전환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최근 국내 원전 비리, 고장 등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민 수용성이 그만큼 낮아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안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전력 공급 위주에서 수요 관리로 전환은 기본적으로 전력예비율이 충분할 경우 통하는 이야기다. 한국은 예비율이 선진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LNG·태양광 너무 비싸…원자력밖엔 '답' 없어
예비력은 예측 수요의 오차, 발전기 불시 고장, 발전소 건설 지연 등으로 인해 전력 수급에서 균형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전력 수요를 초과해 보유하는 발전기의 출력 여유분이다. 예비력이 떨어지면 정전이 발생해 경제활동에 지장을 주고, 예비력이 지나치면 과잉 설비투자로 전력사의 재무구조가 나빠지고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예비율은 20~30%이고, 미국은 31%, 독일은 82%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계통이 연결돼 있어 긴급할 때 이웃나라의 전력을 끌어올 수 있다. 반면 한국은 계통이 고립돼 있고 평균 예비율도 낮다. 전력에 관한 한 섬나라나 마찬가지이고, 낮은 예비율로 근근이 버텨나가고 있다.
이제 한국도 전력예비율 목표를 20% 이상으로 잡고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때다. 노후화 등으로 인한 발전기 고장 정지, 예방 정지 등을 고려해 최소 예비율을 15%로 유지하고 예측 불확실성에 따른 추가 예비율도 5%는 돼야 한다.
원전 건설 계획이 무산되면 화력발전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화력발전 연료인 석탄은 온실가스 배출 문제와 맞닥뜨리고 LNG는 발전 단가가 비싸다. 결국 안전을 담보로 지속 가능한 친환경 기저전력을 확보하려면 현재로선 원자력 발전뿐이다.
지난 5월 말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때문에 원전 3기가 멈춰섰다. 불량 제어케이블 탓에 신고리 원전 3, 4호기 준공도 미뤄질 전망이다. 전력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는 겨울을 앞둔 시점에서 전력 비상사태는 불 보듯 뻔하다.
원전 3기 정지로 한국이 전력 비상사태를 맞은 것과는 달리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무려 50기의 원전이 멈춰섰지만 가스와 석유 발전으로 대체했다. 석유와 가스 소비가 많이 늘었지만 일본의 전력 사정이 크게 나빠지지 않은 것은 일본의 높은 전력예비율 덕분이었다. 일본의 원전 비중은 30%이고 예비율이 28%여서 원전을 모두 세워도 소비를 조금만 줄이면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
한국의 전력예비율은 전력소비 최대 시점 기준으로 5~6%를 오르내린다. 공공기관이 냉방기와 전등을 끄고, 공장 가동 시간을 줄이는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주면서 관리한 결과가 이 정도다. 때문에 여름, 겨울마다 반복되는 전력난을 풀기 위해서는 원전 설비율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후쿠시마 사고로 회의를 품게 됐지만 이런 냉정한 예비율 현실을 직시하고 한국은 원전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정책을 잡아 나가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는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를 포함한 다양한 비상사태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시설을 추가하는 계기가 돼 세계 원전의 안전성 향상에 반면교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가 풍부한 중동지역도 원전을 새로 건설하거나 원전 비중을 높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장 먼저 원전 건설을 승인한 나라다. 신형 원자로 바라카 1~4호기를 2020년 준공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터키도 합류했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13개국 68기이며, 건설 계획인 것은 26개국 162기에 달한다.
문제는 원자력이 아니라 구멍 뚫린 원전 관리감독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도 산업용 전기요금이 이웃한 프랑스 네덜란드에 비해 약 40% 비싸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펴고 있으나 2030년까지 약 2000조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좁은 땅에 자원이 없고 전력도 사오지 못하는 한국은 어떤가. 원자력에 비해 신재생에너지인 풍력발전 비용은 4배, 태양광은 10배 정도 비싸다. 더구나 하루 24시간 전기를 생산하는 석탄, 원자력에 비해 이용률도 매우 낮다. 바람이 불거나 햇빛이 있어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한계 때문에 국가 계획으로 적극 반영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따라서 전력수급 비상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발전소를 더 지어 전력공급력을 확충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국가 전력수급 정책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국토 조건, 수입 의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원전 산업을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지 말고 수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발전원으로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후쿠시마 방사능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흔들리고 일부 기강이 해이한 공무원과 사업자의 비도덕, 무사안일로 무너져 내린 원전. 그러나 그래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자력이다. 국민이 못믿는 것은 원자력 자체가 아니라 구멍 뚫린 원전 관리 감독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서균렬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
■ 읽을 만한 자료
△원자력 대안은 없다, 클로드 알레그르 & 도미니크 드 몽발롱, 2011
△원자력을 말하다, 이익환 전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2012
△원자력 트릴레마,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2013
△원자력은 아니다, 헬렌 칼디코트, 2007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다카기 진자부로, 2011
△한국과 일본의 장기 저탄소 에너지 시나리오, 박년배, 자원환경경제연구 제21권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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