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위기 속 다양한 책기림 행사
단순한 책나눔 대신 독서 유도하는
군포처럼 시민축제 만들어갔으면"
이순원 소설가 lsw8399@hanmail.net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많고도 많은 문학상이 있다. 주변에서 너무 많이 들려서 이제는 그 말조차 하나의 수사가 돼버린 ‘문학의 위기’라는 말속에, 그래도 시인과 작가들의 노고와 성과를 격려하는 여러 문학상에 대해 한 사람의 작가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문학상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이런 방식의 책 기림도 있다. 올해 초 경기도 군포시로부터 아주 오래전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와 함께 대관령 옛길을 걸어 넘으며 나눈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낸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올해 군포의 책으로 선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에도 비슷한 성격의 행사들이 있었다. 도서관의 도시라고 불리고 우리나라 생태수도라고 불리는 순천시에서 ‘한 권의 책 하나의 순천’이라는 모토 아래 매년 시민들과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해오고 있고, 충남 서산시와 경북 구미시도 매년 그 도시가 시민들에게 권하는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시민들과 함께 독서운동을 펼치고 있다. 정말 뜻있는 일이며 감사한 일이다.
이런저런 문학상의 선정과 마찬가지로 이런 행사에 자신의 작품이 선정되는 것 역시 작가나 시인에게는 어떤 이름의 문학상 수상만큼이나 영광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대개 이런 행사는 지방자치단체가 행사에 필요한 책을 일괄적으로 구입해 시민들에게 널리 나누어주는 것으로 끝나기가 십상이다. 물론 그 자체로도 다른 지역단체가 생각하지 못할 대단한 독서운동이지만 그냥 ‘책나눔’ 행사로만 그치지 말고 좀 더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시민 독서운동을 할 수 없을까 늘 생각하게 됐다.
올해 초 군포시로부터 연락받았을 때에도 지자체가 일괄적으로 책을 구입해 시민들에게 나누어주는 ‘책나눔’ 행사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해 동안 지켜보고 참여하면서 우리나라의 여러 지자체가 이런 식으로 시민 독서운동을 펼쳐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군포시는 그냥 시민에게 한 번 책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 읽은 책을 돌려받아 다음 시민들에게 다시 넘겨주는 릴레이 독서운동을 펼쳐나갔다. 5000권의 책이 한 달에 한 번씩만 돈다 하더라도 5만명 가까운 시민이 이 독서운동에 참가하는 셈이다.
그 밖에도 시에서 하는 모든 행사가 책과 함께 하는 행사였다. 10만평이 넘는 철쭉동산에서 펼쳐지는 철쭉축제도, 가을축제도 책과 함께 하는 축제였고, 먹거리 부스 한편으로 책의 거리가 펼쳐졌다. 보통 이런 시의 행사는 성인만을 대상으로 하기 쉬운데 책과 함께 초등학교 아이들을 부모와 함께 거리축제로 불러내고 있었다. 시의 도서관은 도서관대로 어린이, 학생, 청장년, 노인 연령별로 독서 골든벨 대회를 수시로 열었다. 300명이 넘는 마을 통장들을 대상으로도 이런 책읽기 행사와 작품무대를 찾아가 작품 속의 향기 느끼기 행사를 치렀다.
왜 이런 독서운동을 하게 됐느냐고 묻자 시장님이 말했다. “나는 어릴 때 집안이 가난해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어요. 그게 저의 최종학력입니다. 어린 나이에 서점 점원으로 들어갔고, 거기에서 죽어라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어요. 그게 공부인지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동안 지식공부와 사람공부가 조금씩 이루어졌던 것 같아요. 책을 읽는 운동이야말로 지자체가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는 바른 시민운동이 아닐까 싶어 몇 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이다. 말로는 늘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며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실제 사계절 중에 가장 책을 읽지 않는 계절이 가을이라고 한다. 그런 가을에 말로만 ‘등화가친’이 아니라 저마다 꼭 읽고 싶었던,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혹은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밀쳐두었던 책 한 권을 밝은 가을빛 아래 꺼내보자.
이순원 소설가 lsw83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