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는 타산업 경쟁력의 견인 동력
플랫폼, 장비, 네트워크에도 공들여
ICT 생태계의 선순환 이끌어야"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영국은 16세기 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땅이었다. 하지만 17세기부터 시작된 특별이민법은 유럽 각지의 우수한 과학자를 대거 유치하는 계기가 됐고, 영국이 18세기 산업혁명의 물꼬를 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됐다. 21세기 ‘스마트 혁명’에선 소프트웨어(SW)가 그 중심에 있다 할 것이다. 스마트 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핵심 경쟁력이 SW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창조경제 실현도구로서의 ‘SW 혁신 전략’을 보고했다. SW산업을 1960년대 철강 산업에 비견되는 ‘21세기의 경제 실현도구’로 정의하고 SW 인력 양성, 산업경쟁력 제고, 창업과 글로벌화로 이어지는 기업 활동 생태계 조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무형의 가치에 인색한 국내 현실에 비추어 볼 때 SW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정한 자체가 혁신이며, SW를 연구해 온 한 사람으로서 정부의 SW 혁신전략이 나온 것은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신 정보통신기술(ICT) 성장의 키워드인 C-P-D-N(콘텐츠-플랫폼-디바이스-네트워크)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콘텐츠, 플랫폼, 디바이스, 네트워크 중 어느 한 분야라도 소홀히 하면 ICT 시스템이라는 공든 탑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ICT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유독 약한 게 콘텐츠, 즉 SW다. 아직까지 구글이나 애플 등 선진 IT업체들에 종속돼 있는 게 SW다. SW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수많은 노력과 고통 속에서 나오는 산물이다.
혹자는 SW 프로그래머가 3D(Dirty, Dangerous, Difficult) 직업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SW 관련 직종 종사자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 시대를 먹여살리는 창조적 SW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프로그래머가 우대받는 세상, 존경받는 세상이 되려면 SW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 조성이 선행돼야만 한다.
우리는 그동안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해왔다. 이젠 SW도 하나의 권리로써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처럼 사회적 저변이 SW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으로 가득할 때 SW도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 있다. SW 관련해 우수한 성과를 냈을 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는 ‘국산화’, ‘최초 시연’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세계 최초, 최고’와 같은 수식어로 SW 분야에서 성공사례가 많이 쏟아져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
미래부가 발표한 ‘SW 혁신 전략’에는 이런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인지해 성능향상에 관련된 연구개발을 허용하고, 도전적인 연구과제에 대해서는 대형화·장기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등 SW 연구개발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틀이 포함돼 있다. 이제는 넓게 펼쳐진 시장이라는 멍석 위에서 국가 SW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최적의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SW 생태계 내에서 시장, 인력, 기술을 조화롭고 균형있게 다룬 점은 국가 미래 대계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SW에 관한 정책들 가운데 이른바 ‘정책을 위한 정책’들이 적지 않았다. 이제는 SW 혁신전략의 실천을 우선시해야 한다. 산·학·연·관이 한마음 한뜻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도 확보하며 현장에서 실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실천이 잘 되고 있는지에 대한 모니터링도 필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 나라의 SW 투자규모는 국내총생산(GDP)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국가의 적극적인 SW 투자는 고급 인력을 양성해 SW산업 자체의 활성화뿐 아니라 다른 산업분야의 경쟁력도 견인하기 때문이다. SW산업 활성화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전제 조건이다.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