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적 단결과 연대의 함정

입력 2013-10-06 18:39
수정 2013-10-06 21:29
무리짓기는 약자들의 생존 전략
민주화 발전 등에 큰 역할했지만
이젠 함께할 집단인지 따져봐야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어린 시절 귀가 따갑게 듣던 말 중 하나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동의하긴 어려웠지만 한민족이 단결을 못하고 사색당파로 분열됐기 때문에 외적의 침략을 받고 나라까지 빼앗겼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단결을 잘 못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얘기다. 이를테면 해외에서 약소국 출신 이민자들이 크고 작은 단체를 만들어 대장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그러다 보니 서로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는 일도 잦게 돼 바깥에서 보면 사분오열, 지리멸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한국인들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던 따름이다.

사실은 정반대다. 한국인처럼 다양한 수준에서 갖가지 명분으로 단체를 만드는 데 능한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단결을 너무 다양하게 잘해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처럼 정치·사회단체들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 정당은 물론 정치와 직간접적 관계를 가진 각종 단체나 결사들이 지금도 무수히 명멸한다. 한국 특유의 현상인데, 그중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각종 단체들이 층층이 ‘00단체 총연합회’, ‘00단체 연석회의’ 등으로 통합되고 있고 정치적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이들 단체가 전국 대표성을 내세워 함께 모이는 일이 잦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야단체로 불리는 조직체들이 일종의 정치적 연대를 결성해 정부 여당에 맞서는 현상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진보단체와 보수단체가 대로에서 서로 대립하는 광경도 그 어느 때보다 잦아지고 있다. 정치적 균열은 매우 극명하게 나타난다. 어떤 현안이든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한 마치 바다가 두 쪽으로 갈라지듯이 찬성과 반대로 쫙 갈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특이한 것은 이런 현상들이 종종 공식적인 선거과정에서 야권연대니 야권후보 단일화니 하는 형태로 이어지는 일이 일상화돼 온 점이다. 정당이나 노조, 환경단체나 여성단체, 장애인단체, 소비자단체 등 단체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을 텐데, 그토록 신속하게 찬반의 그랜드크로스가 이뤄지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마치 오로지 찬성과 반대만 존재하고 그저 무관심하거나 낙담한 대중들이 구경하는 나라처럼 보일 정도다.

이런 현상이 수십 년 지속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과거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독재정권의 정치적 억압과 물리적 폭력에 맞서려면 소수자, 반대자, 약자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하는 외에 대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단결된 저항이 있었기에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류 민주주의가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단결과 정치적 연대가 적어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무조건적 정치연대나 야권후보 단일화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는 극적인 계기가 됐다. 사람들은 이제 왜 청계천, 서울시청 광장에, 서울역 광장에 모인 단체들이 어떤 목적 아래 무슨 이유로 집회와 농성을 함께하는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함께할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들이 단지 공통의 적에 항거한다거나 선거 승리·정권 획득을 위해 후보를 단일화하고 연대하여 나서는 일을 사람들은 더 이상 쉽게 양해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누가 왜 단결하고 누구와 왜 연대하는지 그 이유와 논리를 제대로 설명하여 납득시키지 못하면 그와 같은 합종연횡의 정치관습도 살아남기 힘들게 된 것이다.

사실 단결과 연대는 소수 약자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또는 강자에게 저항하기 위해 동원하는 생존전략이다. 마치 서식환경이 악화되면 함께 군집을 형성하는 이끼나 원형 대형으로 모여 맹수의 위협을 막는 얼룩말들처럼 위기 극복을 위한 생존본능의 발로이기도 하다. 집단에 의존하는 현상을 윤리적으로 탓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무분별한 단결과 연대에는 함정이 있음을 서서히 고통스런 학습과정을 통해 깨닫기 시작했다. 한국인이라는 공통유대로 단결하는지, 지역이나 계층, 이념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단결하고 서로 연대하는 것인지 이제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가 옥석을 분별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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