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소원' 내일 개봉
소원이는 아동용 애니메이션 캐릭터 ‘코코몽’ 복장을 한 채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아빠(설경구)에게 마침내 다가가 마스크를 벗기고 땀을 닦아준다.
‘나쁜 어른’에게 성폭행을 당해 장애인이 된 소원이는 아빠에게조차 말문을 닫고 지냈다. 아빠는 소원이에게 말을 붙이기 위해 코코몽으로 변신하는 전략을 썼다. 소원이가 정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본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눈물을 왈칵 쏟아낸다.
오는 2일 개봉하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소원’은 아동 성폭행 실화를 감동적인 드라마로 펼쳐낸다. 주변 사람들이 피해 아동을 정상화하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통해 아동 성폭행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지를 고발한다. 이런 전략이 관객들의 공감대를 넓히는 데 성공했다. 만약 범죄 현장과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 집중했다면 감동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카메라는 우선 아동 성폭행이 당사자와 주변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포착한다. 피해 아동은 장기 파열로 평생 육체적 장애를 안게 되고 대인회피증이라는 심리적 장애마저 갖게 된다. 충격을 받은 엄마 미희(엄지원)마저 주변인들을 적대시하는 심리적 장애를 겪는다.
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소원이에게는 소아정신과 전문의(김해숙)와 또래 등굣길 친구가, 미희에게는 이웃 주부(라미란)가 다가가 대화하기 시작한다. 미희와 이웃 친구가 화해하는 장면이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힌다. 이웃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야말로 피해자를 치유할 수 있는 영약이라고 강조한다. 피해자들의 공포와 적개심이 용서와 화해로 변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영화는 술에 지나치게 관대한 우리 사회의 병폐 또한 경고한다. 취중에 저지른 범죄라는 이유로 감형하는 판결에는 등장인물들이 반발한다. 관객들도 범인이 감형을 받아 풀려나면 피해자들은 다시 고통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아빠 역 설경구와 엄마 역 엄지원의 열연도 볼거리지만 소원 역을 맡은 이레의 연기야말로 가장 뛰어나다. 성폭행을 당한 아홉살 소녀의 감수성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이레는 아역배우가 아니라 어른배우처럼 연기했다.
이 감독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천재배우”라고 칭찬했다. 이 감독은 1230만명을 동원한 ‘왕의 남자’(2005) 이후 관객층과 가장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을 내놨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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