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안녕, 가을의 낯선 사람

입력 2013-09-27 17:58
수정 2013-09-27 23:12
"'낯설게 하기'라는 예술기법처럼
익숙한 일상에서 새로움 찾는 게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daeun@chugye.ac.kr


프랑스의 미래학자인 도미니크 바뱅 씨가 올 여름 한국에서 머물렀다. 저서 ‘포스트휴먼과의 만남’에서 “인류가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더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포스트휴먼 시대가 온다”고 주장한 학자다. 그녀는 프랑스문화원이나 한국문학번역원의 프로그램에 따라 자신의 ‘불멸’이론을 강연하거나 글을 썼는데, 행사나 뒤풀이 등이 끝나면 대략 밤 11시가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몸이 지쳐 숙소로 돌아갈 그 시간대에, 그녀는 용수철처럼 솟아오르곤 했다.

“노랑 생선시장이 좋다고 들었다. 보고 싶다.” 노랑 생선시장? 프랑스어로 오간 긴 대화 끝에 알아낸 노랑 생선시장의 정체는 다름 아닌 노량진 수산시장이었다. 자정을 넘어서는 깊은 밤에, 그녀는 외계의 비행선이라도 볼 것 같은 기대로 노랑머리를 휘날리며 노량진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서울의 남산을, 홍대 주변의 카페를, 서울의 뒷골목을 간절히 보고 싶어 했다. 우리 주변의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 미래학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는 포스트휴먼 시대가 온다고 믿는 미래학자는 밤잠을 줄여가며 여행지를 헤매었는데, 그 모습은 도리어 인간의 삶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지구 구경을 서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주장대로 2050년이 되면 인간이 천 년이나 만 년을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멸을 위한 첨단의학기술이나 ‘이상한 불멸대학’에 대한 그녀의 주장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사물과 사람에 대한 그녀의 깊은 관심이었다. 앉는 각도에 따라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그림자가 다르다는 홍대 주변의 한 카페, 여자들만 다니는 대학의 특이한 창립역사, 시력의 변화를 느껴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고 호소하는 30~40대의 한국인들에게 그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프랑스에서는 50대가 되어도 스스로 늙었다고 느끼지 않는데, 한국인들이 너무 빨리 노화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의문이라고도 했다.

요즘 우리는 백 년의 생명력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를 꿈꾸고 있다. 천 년 혹은 만 년에 비해, 그 짧은 생명을 지니고도 우리가 참으로 무심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 것은 미래학자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때로 백 년의 삶도 지루하고 갑갑한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 새로운 것들을 보고 싶어 하면서도, 이방인들이 간절히 찾아 헤매는 새로움이 우리 주변에도 산재해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지각은 일상과 습관에 의해 자동화되고 무감각해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도 그 무감각의 끝에 있는 종착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무감각을 어떻게 깨울 수 있을 것인가.

문득 ‘낯설게 하기(defamiliarisation)’라는 예술기법이 떠오른다. 이는 일상화된 틀을 깨고 사물의 본질을 되찾을 목적으로 주변의 것들을 일부러 낯설게 만드는 기법이다. 우리의 삶에도 낯설게 하기 기법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파리나 로마를 여행하는 장소의 여행자이기 이전에,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시간이라는 극적인 삶의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이 처음이지만 동시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이 아닌가. 그러니 한국인도 한국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다시 보지 못할 것들이 지금도 삶의 차창 밖으로 흘러가고 있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하루를 천 년같이 산다고 했다. 무감각의 상태로 하루하루를 산다면, 백 년을 살건 천년만년을 살건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은 오래되어 익숙한 것들에서 새로움이나 신선함을 찾아가는 독창적인 뇌의 특징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가을이다. 단풍이 서서히 물들고 낙엽도 하나둘 떨어진다.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속의 앤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사랑에 빠져 극적인 밤을 보내고서 서로에게 하던 인사말이 얼마나 인상적이던가. 안녕, 낯선 사람! 오늘 하루, 서울시티투어 버스에 올라탄 이방인처럼 우리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을 관심있게 바라보면 어떨까. 안녕, 가을의 낯선 사람!

김다은 <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daeun@chugye.ac.k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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