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미술산책] 흐물흐물한 달리의 시계…현실 너머로 관객 초대하다

입력 2013-09-27 16:59
수정 2013-09-28 00:03
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14> 달리와 초현실주의



그림 속 대상이 참 낯설다.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인데 저마다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묘사돼있다. 테이블 위에 반쯤 걸쳐진 시계는 흐물흐물 모서리에 걸려 추락 일보 직전이다. 그 옆에 놓인 주머니 시계는 개미들이 갉아먹어 껍데기만 남았다. 나뭇가지 위에 걸린 시계도 마치 이제 막 햇빛에 말리기 위해 널어 놓은 생선처럼 축 늘어져 있다. 더더욱 이상한 것은 이 낯선 실내의 모습이 실외 풍경과 결합돼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기억의 저항’은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들을 하나같이 상식을 뒤엎는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꿈속의 부조리한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한 것 같다.

초현실주의는 1924년 파리에서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출범했는데 이 운동의 참여자들은 인간의 논리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의 숨겨진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기이하고 비이성적인 것들에 주목했다. 그들은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의 자유연상법과 꿈의 분석을 바탕으로 자동기술법(의식적인 통제를 거부하는 창작행위) 같은 새로운 창작 방식을 도입했다.

초현실주의의 뿌리는 다다이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다는 1916년 제1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에 모인 예술가들이 결성한 그룹으로 1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전쟁을 통해 인간 이성과 인류 문명에 대해 회의하게 되면서 탄생했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미술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미술의 허위의식을 부정했고 마르셀 뒤샹은 기성제품도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해 미술의 개념을 전복시켜버렸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인간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상상력을 일깨우려 했다.

스페인의 신출내기 화가 달리가 초현실주의 그룹에 가담한 것은 1929년 파리에서 가진 전시가 주목을 받으면서부터였다. ‘기억의 저항’은 그가 한창 의욕적으로 이 아방가르드 운동에 몰두했던 1931년에 제작한 작품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작품을 제작할 당시 달리는 한창 새로운 과학이론에 매료돼 있었다. 그림에 보이는 흐물흐물한 시계들은 시간과 공간을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달리 자신은 이것이 한여름 무더위에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는 카망베르 치즈(프랑스의 대표적인 치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며 과학 이론 영향설을 부인했지만 말이다.

달리는 편집광적인 행동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벌레를 극도로 두려워했고 차에 치일까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도 꺼려했다. 또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맨발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한번 웃음보가 터지면 멈출 줄 몰랐다고 한다. 악마에 대한 두려움도 대단해 한번은 퇴마사를 불러 자신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악귀를 쫓아내달라며 주술을 행했고 나무 조각 부적을 항상 몸에 지녔다.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인 갈라와도 결혼만 했을 뿐 부부관계 갖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등 그의 기행은 일일이 열거하기 숨이 찰 정도다.

이런 성향은 그의 정치적 입장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파리 시절 브르통 등 초현실주의자들이 공산주의에 공명하며 자신에게 정치적 입장 표명을 요구하자 정치와 예술은 별개라는 애매한 논리를 취해 분노를 샀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자 그는 곧바로 뉴욕으로 이주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그런 달리를 약삭빠른 쥐새끼에 비유하며 “프랑스에서 출세해 놓고 어려울 때는 프랑스를 버렸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1949년에는 독재자 프랑코 총통을 찬양 두둔하며 고국 스페인으로 귀국해 망명예술가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면 곧바로 타협했고 타협하기 어려우면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을 꾀했다. 그리고는 대인관계를 자제하고, 심지어 부인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이 점은 망토를 걸치고 왁스를 발라 위로 말아올린 가식적인 수염을 한 채 늘 떠벌리고 다닌 그의 행동만 봐도 분명하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극도의 희열감을 느낀다”고 하며 자기 도취 속에 살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대미술의 전개과정에 끼친 공로마저 폄하할 수는 없다. 그는 무의식과 상상의 세계를 예술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였고 관객은 그 현실 너머의 세계 속에서 착잡한 현실을 잊고 위안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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