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 씨 가나에서 개인전
내달 1일부터 신작 '바람시리즈' 30여점 선봬
“자연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그런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람이지요.”
서울 이태원의 한 퓨전 음식점에서 만난 사진작가 배병우(63)는 바람에 대한 예찬론으로 말문을 열었다. 오는 10월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윈드스케이프(Windscape風景)’를 여는 그의 바람에 대한 집착은 해묵은 것이다.
항구도시 여수에서 나고 자란 그는 늘 바람이 거친 수파를 만들어내는 바다의 품에서 놀았다. “사라호 태풍이 들이닥쳤을 때 다들 무서워 피신했지만 저 혼자 신이 났어요. 집채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거셌는데도 말이죠.”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나무 연작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그지만 그의 사진 촬영은 원래 바람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궤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바람에 흔들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좇아 전국의 섬들을 떠돌았다. 그런 그에게 제주는 바람이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연출하는 장소로 다가왔다. ‘바람은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제주는 영원한 촬영활동 1번지다.
그의 제주에서의 작업은 한라산 주변 기생화산이 만드는 굴곡을 담담하게 포착한 ‘오름(산봉우리라는 뜻의 제주방언)시리즈’, 제주의 사면을 둘러싼 바다의 정취를 담은 ‘바다시리즈’, 그리고 산속 풀의 움직임을 포착한 ‘식물시리즈’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 세 시리즈가 모여 ‘바람시리즈’가 완성됐다. 제주의 자연은 바람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바람’ 작업은 파리 베를린 등 해외에서 먼저 전시됐고, 독일 하체 칸츠 출판사에서 화집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바람시리즈가 국내에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사진은 하나같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한 것들이다. 옛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디지털 사진은 너무 선명해서 거부감이 들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성적 여운이 풍부한 수묵화 같은 것인데 디지털 기기로는 그런 느낌을 자아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에 출품된 30점의 작품은 카메라로 그린 수묵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윽한 묵향의 정취가 풍겨 나온다.
왜 사진을 찍느냐는 질문에 뜻밖의 답을 내놓는다. “사진이요? 그냥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죠. 이 나이까지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도 요즘은 할 일이 없던데 저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요.” 돌직구성 답변 속에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그게 자연스레 생활수단이 됐다는 뜻이 숨어 있다.
배병우 작가는 이번 전시를 마무리한 뒤 프랑스 루아르계곡 샹보르 성에 초청받아 방문한다. “고성을 에워싸고 있는 숲 속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찍을 예정”이라는 그의 얼굴은 벌써부터 상기된 표정이다. 그가 프랑스 고성에서 어떤 바람의 궤적을 찾아올까 자못 궁금해진다. (02)720-102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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