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압박에 고개숙인 朴…"어르신께 죄송"

입력 2013-09-26 17:14
수정 2013-09-27 00:44
유감표명 예상 깨고 '대국민 사과'
"조세와 복지 최선의 조합 찾겠다"…국민 합의 전제 '증세' 시사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 공약 축소 논란에 대해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서 죄송한 마음”이라고 26일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만 기초연금을 받는 정부안을 확정짓게 된 배경을 설명한 뒤 이같이 말했다.

대국민 담화가 아닌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박 대통령이 기초연금 공약 축소가 가져올 후폭풍을 염려했다는 방증이다. 특히 전날까지만 해도 측근들은 박 대통령이 ‘공약을 100% 지키지 못해 유감이다’는 수준의 발언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박 대통령은 예상을 뛰어넘어 “죄송한 마음”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사과에 가까운 표현을 쓴 것은 박 대통령의 결단”이라며 “그만큼 기초연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씩 지급한다’는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 부담을 느껴왔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하지만 “이것이 공약의 포기는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박 대통령은 먼저 “세계 경제의 침체와 맞물려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세수 부족이 크고 재정 건전성도 고삐를 쥐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기초연금 대상자 축소 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세수 부족부터 막지 못하면 최소한의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절박한 현실을 강조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저의 신념은 변함이 없다”며 “비록 지금은 어려운 재정 때문에 약속한 내용을 일정 부분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임기 내에 반드시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재정 사정이 나아지면 65세 이상 노인 전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 대상자 확대 등 복지공약 이행을 위해 증세 문제까지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복지제도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된다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며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만들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세의 수준과 복지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최선의 조합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적 합의가 있다면 증세를 해서라도 복지정책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라며 “사실상 증세 문제를 공론화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경제 활성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치권과 국민의 협조를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근본적으로는 빨리 경제를 살려서 세수가 확보돼야 한다”며 외국인투자촉진법을 비롯한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기획재정부로부터 내년도 예산안을 보고받고 나서도 경제 활성화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기재부는 재정 건전성 확보에 방점을 두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올해 수준(1.8%)보다 낮은 1.7%에 맞춰 총 지출·수입 예산안을 짜 보고했지만 박 대통령이 “당장 경제부터 살려놓고 봐야 하기 때문에 내년에 재정수지가 다소 나빠지더라도 지출을 더 늘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내년도 총 지출 규모는 당초 정부 초안보다 1조5000억원가량 더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의 재조정 지시에 따라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당초 계획보다 증가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부는 SOC 예산을 대폭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지만 박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SOC 사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예산 삭감폭이 당초 계획보다 2조원가량 줄었다는 전언이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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