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없이 회생 매달렸지만 4분기 연속 적자에 무릎
악화된 건강도 영향미쳐…朴부회장 "이젠 쉬고 싶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던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경영부진의 책임을 지고 부회장직에서 사임하기로 했다. 팬택을 창업한 지 꼭 22년6개월 만이다. 팬택은 전체 직원의 3분의 1인 800여명을 대상으로 무급 휴직을 실시하는 등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줄여 회생을 모색한다는 전략이다. 노키아와 블랙베리가 잇달아 인수되는 등 글로벌 휴대폰 시장이 격변하는 가운데 퀄컴과 삼성전자 채권단 등으로부터 잇단 자금지원을 받아 연명해온 팬택이 박 부회장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왜 물러나나
박 부회장은 24일 오후 주주협의회(채권단)를 주도하고 있는 산업은행을 찾아가 직접 사임의사를 밝혔다. 채권단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7~9월)부터 계속 적자를 내는 등 경영상황이 악화되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다”며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이후 건강이 나빠진 것도 원인”이라고 했다.
박 부회장의 사임은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채권단은 박 부회장의 사임에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김윤태 산업은행 부행장은 “박 부회장이 직원들에게 무급휴직을 요구하면서 본인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오랫동안 경영 후계구도를 구상해왔기 때문에 직접 경영을 진두지휘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박 부회장은 팬택 창업자다. 맥슨전자 영업사원으로 시작한 그는 1991년 맨손으로 팬택을 세워 무선호출기(삐삐)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휴대폰 사업으로 덩치를 키운 뒤 현대큐리텔과 SK텔레텍을 잇달아 인수해 지금의 팬택을 만들었다. 거침없는 성공신화는 창업 15년 만에 암초를 만났다. 팬택은 2006년 불어닥친 모토로라의 휴대폰 ‘레이저’ 열풍과 국내외 금융환경 악화로 2007년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박 부회장은 창업주로서 모든 권리와 약 4000억원 규모의 지분도 포기하고 기업회생에 매달렸다. 매일 아침 6시 출근해 퇴근과 주말이 없는 5년 반이 흘렀다. 그러나 팬택의 회생은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 애플 등 세계 굴지 스마트폰 업체들과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진 탓이다.
팬택은 지난해 3분기부터 4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올해 2분기엔 49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1분기 78억원보다 적자 규모가 확대됐다. 박 부회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외부자금을 끌어왔다. 팬택은 올해 들어 퀄컴, 삼성전자, 채권단으로부터 각각 245억원, 530억원, 1565억원을 지원받았다.
○박병엽 없는 팬택 운명은
앞으로 팬택 경영은 올해 초부터 공동대표이사를 맡아온 이준우 부사장이 주도할 예정이다.
팬택은 지난달 초 내놓은 LTE-A 스마트폰 ‘베가 LTE-A’와 오는 10월께 선보일 통신3사 공용 LTE-A폰 등 신제품을 앞세워 4분기에는 흑자로 전환한다는 목표다. 팬택 관계자는 “월 15만대가량인 현재 판매량을 20만대까지 끌어올리면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박 부회장이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거나 경영고문으로 남아 기업 회생작업을 돕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은 이날 밤 서울 평창동 자택 앞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팬택으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2011년에도 박 부회장은 채권단에 사의를 밝혔지만 당시 연내 워크아웃 졸업에 합의하는 조건으로 1주일 만에 복귀한 바 있다. 박 부회장은 “이번엔 다르다”고 했다. 그는 “800여명의 직원을 내보내겠다는 결정을 하면서 창업주로서, 경영자로서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좀 쉬면서 몸을 추스른 뒤 새로운 일을 찾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설리/심성미/이상은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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