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고향이 서울에 기독교랬지?"…명절마다 당직서는 비극이 ㅠㅠ

입력 2013-09-16 17:21
수정 2013-09-17 03:01
"시댁 잔소리, 느낌 아니까"…차라리 출근하고 수당 챙겨

추석 근무자의 애환

美FOMC 결과, 추석 발표…증권사 직원들 "하필이면…"
"출근해, 같이 편안하게…" 기러기 부장님과의 이틀…하나도 안 편하거든요



H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이 대리는 이번 추석 연휴 고향에서 휴대폰을 꺼놓을 순 있어도 노트북컴퓨터는 끌 수 없다. 전 세계 주식시장의 향방을 결정할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가 추석 당일(19일) 오전 3시(한국시간)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이 대리는 19일 이후 숨가쁘게 돌아갈 미국·유럽 등 글로벌 증시의 흐름을 체크하고 분석해 23일 발간할 보고서에 담아야 한다. 연휴 마지막 날인 22일 출근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대리는 “연휴 5일 중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될지 모르겠다”며 “FOMC 결과 발표가 하필이면 19일인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직장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5일간의 추석 연휴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16, 17일 의무 휴무를 시행한 일부 기업의 직원들은 지난 주말부터 사실상 9일간의 휴가에 들어갔다.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추석 연휴 때도 출근해야 하는 김 과장, 이 대리들에겐 ‘다른 나라’ 얘기다.

○연휴 때 출근해도 수당은 받지 마라(?)

대기업 전자계열사에 근무하는 권 대리(29·여)는 이번 추석 연휴 후반인 토요일이나 일요일 회사에 나와야 한다. 다음주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관련 자료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집에서 일하면 안 되냐”고 하시지만 권 대리 회사는 업무용 노트북과 자료의 외부 반출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결국 ‘출근하고 업무일지 올리면 수당 나오니까…’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런데 지난주 부서원들 사이에서 ‘호랑이’로 통하는 박 부장으로부터 이런 이메일을 받고 많이 당황했다. “요즘 긴축 경영인 것 알지? 직원들 연휴 때 출근시키지 말라는 게 윗선의 지시야. 출근을 하든 안 하든 수당은 신청하지 마.” 권 대리는 “억울하지만 박 부장이 무서워서요. 지시사항 어기면 불호령이 떨어질 게 분명하거든요. 이번 연휴엔 일만 하고 수당은 포기해야겠네요”라며 씁쓸해했다.

대기업 B사 기획팀에서 일하는 김 과장(35·남)은 이번 추석 연휴 때 부모님을 뵈러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는 것을 포기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는 23일(월요일) 사장 주재 회의가 예정돼 있어서다. 이날 회의 때 기획팀장이 발표를 하는데 관련 자료 만드는 건 ‘파워포인트의 신’으로 불리는 김 과장의 몫. 게다가 연말 인사에서 전무 승진을 기대하는 팀장은 이번 기회에 사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팀장은 김 과장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추석 연휴 첫날인 수요일과 토요일에만 출근해 자료를 만들자고. 다른 연휴는 푹 쉬고.” 문제는 김 과장의 고향이 부산이라는 점. 그는 그냥 서울에 남아 있는 쪽을 택했다. 5일간의 황금 연휴를 기대했던 꿈도 함께 날아갔다. “솔직히 연휴가 끝나는 날에는 중요한 회의를 잡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소한 연휴 때는 푹 쉬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지난 7월 보험회사로 이직한 최 대리(30·남). 이번 연휴 때 친구들이 중국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지만 고심 끝에 거부했다. 업종을 바꿔 이직한 탓에 업무 적응이 안 됐기 때문이다. 눈물을 머금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동영상 강의를 들으러 출근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주 회식 때 최 대리는 자신의 입방정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고. 경력직원으로서 윗분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전 이번 추석 연휴 때 금요일 토요일은 출근할 생각입니다. 업무를 익혀야 할 것 같아서요”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이 말을 들은 부장이 반색을 하며 “그래? 최 대리 그럼 우리 같이 즐거운 추석을 보내볼까? 나도 출근함세”라고 말했던 것. 알고보니 부장은 아들과 아내를 미국으로 보낸 ‘기러기 아빠’였다. 추석 연휴 중 이틀을 부장과 사무실에서 보내게 된 최 대리는 할 말을 잃었다.

중견기업 B사 품질팀에 근무하는 강 대리(32·남)는 설과 추석 연휴 때마다 당직을 선다. 1년 365일 공장이 돌아가야 하는 회사의 특성상 명절 때도 일정 인원의 품질팀 직원들은 출근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서울이 고향인 강 대리가 명절 때마다 ‘단골 당직자’가 된다는 것. 입사 초기 선배들이 “고향이 서울이랬지? 종교는 기독교?”라고 넌지시 물어봤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맞습니다”라고 말한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팀장은 조심스럽게 강 대리를 불러 이렇게 말한다. “다른 직원들은 고향이 멀지만 강 대리는 집이 서울이잖아. 게다가 집안이 기독교라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면서?” 강 대리도 처음엔 동료들의 사정을 고려해 연휴 때 회사에 나왔지만 매번 명절 때마다 출근하는 게 지겨워졌다. “다음 명절부터는 제사를 지내자고 부모님께 말씀드릴까 생각 중입니다. 연휴 출근 때문에 이젠 종교까지 버리고 싶다니까요.”

○차라리 출근이 낫다(?)

마지못해 출근을 자청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H그룹 계열사 한 부장(47·남)은 이번 추석 당직근무를 신청했다. 아내가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이다. 한 부장의 아내는 “딸이 공부도 해야 하고 나도 몸이 안 좋으니 이번 추석 땐 집에서 쉬고 싶다”고 했다. 시댁에 거짓말을 할 순 없으니 ‘남편 근무’를 핑계로 집에서 쉬겠다는 것이다.

중견 디자인업체에 근무하는 조 대리(28·여)도 이번 추석 연휴 때 출근을 자청했다. 지난 설 때의 악몽 탓이다. 지난해 결혼한 ‘초보 며느리’ 조씨는 지난 설 시댁에 가서 난생 처음 갖은 음식을 만들고 제사 준비를 하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결혼 전 요리 한번 하지 않았던 조 대리는 연휴 내내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전을 부쳐야 했다. 밉상 남편은 쇼파에 벌러덩 누워만 있었다.

결국 조씨는 이번 추석을 앞두고 1주일간 남편을 들볶은 끝에 연휴 첫날인 수요일과 금요일에 출근하기로 했다. “밉상 남편한테 출근을 허락해주지 않으면 국물도 없을 것이라고 소리쳤죠. 대신 추석 연휴 출근으로 받은 수당은 남편을 위해 투자하려고요.”

황정수/강경민/박한신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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