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유동성 앞세워 공격 영업
국내 은행보다 금리 1%P 낮아
중국 은행들이 풍부한 외화 유동성을 바탕으로 국내 외화대출 시장에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최근엔 연 2%대 후반의 파격적인 금리를 제시하며 거액을 대출하는 사례도 나왔다.
15일 금융계에 따르면 중국 5위 은행인 교통은행은 최근 대한항공에 2억7000만달러(약 3000억원)를 대출했다. 우리은행의 지급보증을 받아 대출한 것으로 대출 규모가 이례적으로 크다는 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연 2% 후반대 파격 대출
교통은행 서울지점이 대한항공에 대출한 2억7000만달러는 대한항공이 프랑스 에어버스사로부터 대형 항공기 A380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다. 교통은행이 제시한 이자는 연 2% 후반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금리가 연 3~4%대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다.
이번 대출은 국내 대기업이 국내 시중은행의 보증을 받아 중국계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은 이례적 사례로 꼽힌다. 이런 ‘딜’이 이뤄진 이유는 교통은행과 대한항공, 우리은행 3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교통은행 입장에선 국내 기업에 낮은 금리로 대출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나중에 추가 대출 기회도 잡을 수 있다. 특히 우리은행의 지급보증으로 리스크도 분산시켰다. 우리은행은 리스크를 안는 대신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보증수수료는 보증액의 약 0.5% 수준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통상 기업들이 항공기나 선박을 도입할 때 국내외 수출신용기관(ECA)의 보증을 받는데 ECA의 보증 한도가 거의 차면서 시중은행에 기회가 온 것 같다”며 “항공기를 담보로 잡았기 때문에 리스크도 거의 없어 은행 입장에선 비이자수익(수수료)을 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입장에선 싼 이자로 큰 돈을 빌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우리은행의 보증 덕에 국내 시중은행에서 받는 대출보다 연 금리가 0.5~1%포인트 낮다.
○중국계 은행 여신 대폭 늘어나
중국계 은행들은 국내 은행의 외화대출 공급이 주춤해진 사이 공격적 영업으로 대출을 늘리고 있다. 미국·유럽계 은행들이 최근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영업을 축소하면서 생긴 틈새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세계 최대인 중국 공상은행 서울지점은 올 6월 말 총여신이 2조8993억원으로 지난해 6월 말 2조1749억원보다 26.6%(7244억원)나 늘었다. 대부분 기업 대출이다. 공상은행은 지난해 말 서울 자양동 건국대 앞에 추가로 지점을 여는 등 공격적인 영업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 은행의 서울지점도 지난 1년 새 여신 규모를 63% 늘렸다. 중국 건설은행 서울지점의 총여신은 같은 기간 3배 이상 증가했다.
일본계 은행들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같은 기간 미즈호코퍼레이트 서울지점의 총여신은 5조98억원에서 5조7232억원으로 14.2% 증가했다.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 서울지점의 총여신도 3조3943억원에서 3조5093억원으로 3.3% 늘었다.
한 외은지점 관계자는 “국내 시중은행들은 외화 유동성을 유지해야 하고 조달 금리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어서 대규모 외화대출을 해주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한국 기업들의 수요와 시장 확대를 노리는 외은지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은행의 외화대출은 주춤하고 있는 모양새다. 2010년 말 잔액 기준으로 361억2000만달러였던 국내 은행의 외화대출은 작년 말 299억3000만달러까지 줄었다가 올 들어 소폭 늘어났다.
장창민/김일규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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