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둔황
무지개처럼 빛나는 칠채산
세계최대 석굴사원 모가오쿠
거대한 모래산까지…신비를 품은 곳
작렬하는 태양도, 거친 모래바람도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고단한 육체가 정신을 옥죄어도 전진은 계속된다. 이곳이 ‘실크로드’이기에 가능하다. 2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이 신비의 길은 아시아와 유럽의 교류 현장이자 동서양 문화의 통로 역할을 해왔다. 황량한 사막을 지나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길에는 과거의 흔적과 현대 문명이 공존한다. 현대에 이르러 실크로드는 탐험가와 여행자들이 한 번쯤 동경하고 꿈꾸는 길이다. 막연히 상상 속에서만 맴도는 땅,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정은 언제나 호기심과 설렘을 안겨준다. 수천년을 거슬러 실크로드 대장정에 나섰다.
기묘한 산세와 무지갯빛 산
실크로드의 길목인 중국 간쑤(甘肅)성 란저우에서 기착지인 둔황까지는 1240㎞. 버스나 기차를 타고 쉼없이 달려도 16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서 흔히 하룻밤 묵는 곳이 장예다. 이곳에서 칠채산(七彩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곱 가지 색채를 띠는 칠채산의 공식 이름은 ‘장예단하국가지질공원’으로 단하(丹霞)는 ‘붉은 노을’을 뜻한다. ‘칠
채산’이란 이름을 한국 관광객들이 지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오랜 기간 지질운동을 거친 붉은색 사암이 풍화와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독특한 지형이다. 그래서 층층이 다른 빛깔을 낸다.
산은 총 4구역으로 나눠져 있는데 셔틀버스가 입구에서 전망대 부근까지 운행한다. 산중턱에 있는 첫 번째 전망대에 오르면 형형색색의 신비로운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 산이 맞아? 아니, 지구 맞아?’ 기기묘묘한 산세와 겹겹의 지층이 선명한 봉우리들이 봉긋봉긋 솟아 있는 모양새가 흥미로운 볼거리를 선사해 마치 새로운 행성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산 정상 쪽을 바라보면 병풍처럼 둘러싸인 봉우리들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웅장한 산세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계곡을 따라 형성된 구릉은 두께와 모양이 제각각이고 단층마다 화려한 빛깔을 자랑한다. 다채로운 색으로 채색된 지층은 주름치마처럼 흘러내려 더욱 신비하다. 그중 흰색은 소금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곳이 먼 옛날 바다였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네 번째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일곱 가지 스펙트럼으로 빛나는 지형은 마치 무지개로 만든 산을 보는 듯하다. 저 멀리 희미한 산 위에 그려진 무지개의 끝엔 거대한 사암이 성곽 같이 우뚝 서 있다. 특히 지층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해질녘 풍경은 환상적이다. 멋진 장면을 모두 담아가기 위해 여행객들의 손길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실크로드의 중심도시 둔황
장예에서 주취안을 거쳐 3시간쯤 달리면 자위관(嘉山谷關)이 나온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 관문으로 1392년 명나라 때 만들어졌다. 그 후 20여차례 대규모로 중건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성곽은 말 그대로 천하웅관(天下雄關)이다. 높이 10m, 둘레 733m의 거대한 성으로 대부분 황토를 다져 만든 벽돌로 쌓아올렸다. 성채는 아름답고 장엄하다. 요새처럼 만든 내성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3개의 망루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치롄(祁連)산맥의 만년설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성 안팎을 걷다 보니 성벽 위로 저물어가는 태양이 세월의 무게를 더해준다.
실크로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둔황(敦煌)이다. 과거 서역을 향해 떠났던 사람들이 쉬어가던 오아시스에 세운 도시다. 한때 동방과 서방의 정치 경제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고 당나라 때까지 번영을 누렸다. 그 번영의 산물 가운데 하나가 세계 최대 석굴 사원인 모가오쿠(莫高窟)다. 둔황시내에서 자동차로 20~30분이면 닿을 수 있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서기 366년부터 14세기 원나라 때까지 약 1000년 동안 700여개의 석굴이 만들어졌으나 약탈과 도굴로 인해 불상과 벽화가 남아 있는 굴은 492개뿐이다. 높낮이가 제각각인 석굴들이 엇갈려 자리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내부로 들어가면 다양한 조각상과 천장과 벽면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벽화에는 둔황의 역사, 즉 중국 역사의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 시대의 특징과 문화의 전래 및 변화 과정이 응축돼 있는 것 같다. 도무지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상과 벽화 앞에서 관광객들은 누구나 탄성을 지른다.
모가오쿠에서 가장 유명한 굴은 장경동(藏經洞)으로 알려진 17호 굴이다. 16호 굴의 한쪽 벽을 뚫어 만든 곁굴이다. 1900년에 신라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을 포함해 5만여점에 이르는 그림과 문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유물들의 가치가 워낙 높다 보니 장경동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도굴꾼’이 끊이지 않았다. 그림과 문서 수만점이 유출됐으며 석상을 들어내고 벽화를 떼어간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 굴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고려 홍변 스님의 좌상이 눈길을 끈다. 약탈 과정을 그저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을 스님의 얼굴은 그래서인지 조금은 슬퍼 보인다. 중국 정부는 석굴 보존을 위해 겉면에 벽을 한 겹 덧붙였다. 관광객에게 개방하는 굴의 수도 줄이고 있다. 일반 관광객이 볼 수 있는 건 8~9개에 불과하다. 안내원의 인솔 없이는 개별적으로 들어갈 수 없다. 사진 촬영도 금지된다.
모래소리가 악기 같은 밍사산
둔황의 또 다른 명소는 도시 외곽에 자리한 밍사산(鳴沙山)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모래 소리가 마치 악기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서 40㎞, 남북 20㎞에 이르는 거대한 모래산이 장엄한 자태를 뽐낸다. 이 앞에 서니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새삼 실감한다. 희고 고운 모래가 만들어내는 능선은여체의 곡선처럼 매끄럽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 흡사 물결치는 파도를 연상케 한다.
입구에서는 손님을 기다리는 수십마리의 낙타를 볼 수 있다. 낙타를 타고 산에 오를 수도 있지만 맨발로 고운 모래를 직접 밟아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산꼭대기까지 오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지만 무더운 날씨 탓에 갈증이 느껴지고 모래에 발이 푹푹 빠져 애를 먹었다. 모래 입자는 부드러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정상에 다다르자 한줄기 바람이 온몸을 스친다. 정상에 서서 환상적인 일몰을 감상하며 대자연의 숨결을 느껴본다.
여행팁
중국 간쑤성은 내륙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기후가 건조한 것이 특징이다.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나 일교차가 크다. 강수량도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보통 7~10월이 1년 중 실크로드를 여행하기 적당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하나투어(hanatour.com)는 실크로드의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여행상품을 선보였다. 중국 동방항공(인천~란저우 3시간 소요)과 대한항공(인천~우루무치 5시간 소요) 특별 전세기를 이용하면 된다. 두 항공은 10월 초까지 각각 주 2회 운항한다.
올해 처음 선보인 동방항공의 인천~란저우 전세기를 이용하는 ‘실크로드 란저우·둔황’ 5일 상품은 란저우를 출발해 장예의 칠채산, 둔황의 밍사산과 모가오쿠 등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야간열차(4인1실)를 체험하고 양관 고성 전동카, 밍사산 낙타타기 일정 등이 포함된 상품으로 99만9000원부터
예약할 수 있다. 1577-1233
간쑤성(중국)=강행원 기자 khw@hankyung.com
관련기사<li>서울 웨스틴조선호텔 100주년 특선메뉴 선보여</li><li>가을仙界</li><li>척박한 땅, 하지만 찬란한 곳</li><li>'선양'으로 유명한 대전 소주 회사 맨발걷기 등 다양한 사업 펼쳐</li><li>계족산 꾸민 뻔뻔男 "술·황톳길 공통점은 문화 콘텐츠"</li>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