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도 슬픔도 추억이 된 시간들
전화 목소리 듣고 만나 어울리며
그냥 좋았던 그 시절 되돌린다면"
이윤학 시인 uhpoem@hanmail.net
초등학교 동창회 인터넷 카페를 개설한 지 10년이 됐다. 동창이라야 100명이 조금 넘는 시골학교였지만 도시로 이사 간 친구가 많아 연락이 쉽지 않았다. 몇몇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외국으로 나간 친구들도 있었다. 고향에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만 소식이 끊긴 친구들도 있었다.
연락이 닿은 친구들과 두 분 은사님을 모시고 동창회 모임을 가졌다. 해마다 학생이 줄어 간신히 폐교를 면하는 모교에 들러 사진을 찍고 소풍 가던 근처 바닷가로 몰려가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러 명절 때마다 보는 친구도 있었지만 졸업 후 처음이거나 어쩌다 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웃고 떠드는 사이 25년 세월의 간극은 좁혀졌으나 나이 먹은 친구들을 보면서 내 나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평생 나이를 먹지 않을 줄 알았다. 우리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회장과 총무, 서울 인천 수원 지역의 간사를 뽑았다. 정기 모임은 물론 지역별 모임을 수시로 갖자고 의견을 모았다. 빠른 시일 안에 회칙을 만들어 카페에 공지하기로 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카페 회원 200명을 돌파했다. 아이디가 없는 친구들은 아이들 아이디로 가입했고 선후배들도 가입했기 때문이다. 많은 회원들이 글과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달았다. 수시로 카페에 드나들며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누가 개업하거나 승진했을 때, 친구가 아프거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잔치가 열렸을 때, 우르르 몰려가 축하해 주었고 위로해 주었다. 정기모임 지역별 모임 외에도 계절마다 야유회를 갔으며 수시로 번개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카페에 들어오지 않는 친구가 많아졌다.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친구들이 한정되었다. 날마다 그 밥에 그 나물이 된 것이다. 대다수의 회원들이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신물이 나 외면해버린 것이다. 떠드는 사람은 계속 같은 이야기로 떠들고 그 걸 들어줄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대부분이 유령 회원이 된 카페는 어쩌다 공지사항만 올라오는 외딴집이 됐다. 송년회나 애경사에 참석하는 친구도 몇 남지 않았다. 그 대신 분당하듯 서로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모임을 갖게 됐다.
10년쯤 전부터 향우회 모임을 시작했다. 명절 하루 전날 저녁에 마을회관에서 만나는 출향민들의 친목 모임이었다. 회비를 걷어 마을의 발전을 위해 기부하고 회원들의 애경사를 챙겼다. 마을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순번을 정해 상여를 메기도 했다. 몇 해는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석해 마을회관에 가면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들뜬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부모가 돌아가신 회원들이 발길을 끊기 시작하고 마을회관에 모이는 회원은 고정됐다. 향우회 초창기에 만들었던 인터넷 카페도 불이 꺼진 외딴집이 됐다. 마당에 세워진 차를 보고 누가 왔나보군 하고 짐작할 뿐, 반색해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오랫동안 서로 왕래가 없어 벽이 두꺼워진 것이다. 살아온 길이 달라 뻔한 인사밖에는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는 선물꾸러미를 들고 불쑥 찾아가기에도 쑥스럽게 됐다.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에 내려갈 걱정이 앞선다. 짜증을 부리는 아이들에게 쥐어줄 스마트폰은 생겼지만 운전대를 잡아야 할 시간이 끔찍하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느라 부모 형제 친구와의 사이가 소원해졌다. 명절에 부모 형제를 만나는 기쁨,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추억은 되돌릴 수 없는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해졌다.
얼굴만 보고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 기쁨도 즐거움도 추억이 된 시간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거실에 걸린 오래 전의 가족사진을 올려다보면서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죽기 전에 다 같이 모여서 가족사진 한 장 찍을 날이 올지 모르겠다.’ 모두가 하는 일이 다르고 각자 바쁘기 때문에 한자리에 모이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상을 당해도 만사를 젖혀두고 달려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올 추석에는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려보는 건 어떨까. 전체 문자를 보내지 말고.
이윤학 시인 uhpo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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