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이재원의 좌충우돌 육아] (1) "엄마 꿈나라는 어디야?"

입력 2013-09-13 09:46
수정 2013-11-22 14:26
"지오야, 우리 꿈나라가자."

14년전이던가. 아이를 낳은 전업주부 친구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아기 때문에 밖에 못 나가니까 우리집으로 놀러와"라는 말에, 퇴근 후 버스를 갈아타고 그녀의 집에 갔다. 오랜만에 친구 얼굴도 보고, 귀여운 아이의 재롱도 보고, 수다도 떨고...맥주 한 잔은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친구의 집에 갔지만 내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아기가 잠을 자야 하여, 친구는 아기를 안고 업고 달래고 자장가를 불렀다. 졸지에 아기가 잠들기를 기다리다, 졸린 눈을 비비고 나 역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시는 내가 아기 있는 친구 집에 안 가리라'는 다짐과 함께.

사실 당시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하지만, 아기가 혼자 잘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던 것이다. 어른처럼, 그냥 이불을 깔고 누워서 잠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부드럽게 안고,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줘야-그것도 꽤 긴 시간을-한다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덧 친구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지오를 낳고, 이제는 아이를 재워야 하는 일을 나의 당연한 하루 스케줄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연애시절, 노래방에만 가면 남편을 충격에 빠뜨리던 노래 실력으로, 만 두돌이 넘도록 날마다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기도 했다. 신생아 때는 잠이 들 때까지 안고 토닥이다 오십견이 오기도 했다.

만 세살이 넘은 아들녀석에게는 요즘 말로 논리를 가져다 대며 재워야한다. "내일 어린이집 가려면 어서 자야지"라고 설득도 해보고, "아빠 오시면 혼나겠다"라며 살짝 남편을 팔기도 한다. 지오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서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책도 함께 읽고, 간지럼을 태우다가, 지오가 즐겨마시는 주스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다. 때로는, 아니 대부분은, 이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기에 나의 몸과 마음이 너무나 지쳐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요즘 쓰는 방법은, 이 즐거움이 잠들어도 끝나기 않을 것이라고 아이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다.


"지오야, 엄마랑 이제 꿈나라가자. 거기서 미끄럼틀 탈까? 아님 정글짐 할까? 꿈나라에서 만나서 또 엄마랑 놀면 되니까 어서 가자."

몇 개월간, 대체로 아이는 놀이터에 간다는 생각에 수긍을 해 왔다. 하지만 최근, 예상하지 못한 균열을 맞고 말았다.

"근데 엄마, '나라'가 뭐야?"

"'나라'?음...그게 말이지, 엄마가 내일 알려줄게."

"오늘은 몰라?"

"(이 녀석, 어떻게 알았지)응, 오늘은 몰라. 내일 이야기해."

"내일은 뭐라고 할건데?"

"(으악. 그걸 알면 내가 내일로 미루냐?)그것도 내일 알려줄게."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재우고, 네살배기에게 '공격'받고 맥없이 무너진 나 자신이 우스워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했다. 짖궂은 남편, 다음날 아침, 한술 더 뜬다.

"지오야, 엄마한테 '나라'가 뭔지 물어봐."

난감한 상황이다. '아군'인줄 알았더니 '적'의 편을 들다니. 그나저나, '나라'가 뭔가.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자니, 외국에 살아도 국적은 유지가 되니 공간으로 설명하면 안 될 것 같고... 한 핏줄이라고 하자니, 그건 민족인 것 같고. 베네틱트 앤더슨은 기념비적 저서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은 '문화적 조형물'이라고 하였는데, '나라'의 개념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나라'라는게 도대체 뭔 기준으로 형성되는거야? 사회 교과서를 구해봐야 하나?

지오에게 말끔한 설명을 하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났다. 나름 이성적이고 지적인 엄마라고 자부(사실은 착각)해 온 나에게 어쩌면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제, 잠자리에 누웠더니 지오가 나의 말투를 흉내내어 먼저 이야기한다.

"이제 꿈나라에 가자아아~."

"꿈나라? 그게 뭔데?"

"잠드는거야."

"그래? 그럼 여긴 무슨 나라야?"

"여긴 지오나라지이이이~!"

그래, 지오나라 맞네. 행복한 우리집이 지오나라지. 쑥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마음에 아이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며 물었다.

"그런데, 지오야, 꿈은 꿔 봤어? 꿈이 뭐야?"

"응! 나 꿈꿔봤어! 이천...이천칠년에!"

2010년생 지오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까무룩 잠이 든다. 해야 할 일을 산더미처럼 마음 속에 쌓아둔 채이지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그렇게 아들래미와 유치한 대화-하지만 나는 선문답이라고 생각하는-를 나눌 때다.

이재원 < 텐아시아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