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최문기 "창조경제도 코끼리처럼 우직하게 밀고 나갈 것"

입력 2013-09-12 17:32
수정 2013-09-12 22:48
타고난 강골…소폭 30잔 거뜬
중·고교때 핸드볼 전국체전 우승

ETRI 시절 TDX 교환기 개발…퀄컴서 오히려 로열티 받았죠

사업화 되어야 진정한 R&D…'창조경제 타운' 사이트 곧 오픈


"R&D를 했으면 결과를 누군가 활용하게 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케이스 스터디하듯 하는 것은 R&D라고 볼 수 없다. R&D는 결국 기술을 사업화하는 게 목적이다. 장관으로 와서 보니 출연연구원장들도 공무원한테 먼저 숙일 생각부터 하는 것 같다. 연구원들이나 원장 모두 열정을 갖고 일해야 한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62)은 타고난 장사 체형이다. 180㎝의 키에 몸무게는 100㎏에 육박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핸드볼 선수까지 했던 그의 손은 보통 사람보다 1.5배는 커 보인다. 지난주 천안에서 열린 미래부 기자단과의 워크숍 자리에서는 소주 폭탄주 30잔을 마시고도 거뜬히 귀가했다.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대답 대신 “허허허허허” 긴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등 말수도 많지 않다. 경북 영덕 태생의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다.

박근혜 정부의 아이콘 부처인 미래부 첫 수장인 최 장관을 경기 과천시 문원동 강릉동치미막국수집에서 만났다. 지인인 최양희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의 추천으로 알게 된 이 집은 수육, 통문어, 막국수 등 동해 음식을 맛깔나게 내놓는 집이다. 최 장관은 “강원도 음식은 태백산 줄기 따라 경계가 나뉘는데 동해 쪽은 영덕에서 함경도까지 비슷하다”며 “고향의 입맛에 가까워 자주 찾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주메뉴는 수육. 암퇘지 고기로 만들어 부드럽고 야들야들해 이 집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정성스럽게 삶은 수육과 김치 속이 푸짐하게 차려지자 반주로 동동주를 주문했다. 동동주가 나오자 최 장관은 “색깔이 맑은 게 사람 죽이겠는데…”라며 건배를 제의했다. 한때 소주 6병까지 마셨다는 주당다운 면모다.

4남1녀 중 둘째인 최 장관은 어린 시절 공부와 운동에 모두 소질을 보였다. 경북중 시절 핸드볼 선수로 전국체전에 나가 우승까지 차지했다. 손이 큰 이유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핸드볼해서 큰 게 아니라, 손이 커서 핸드볼 한 것”이라며 농담도 던졌다. 학창 시절 그의 번호는 항상 62번이었다. 키가 커 학급에서는 맨 뒤에 서야 했다. 그는 “원래 수비형 성격인데 상대가 깔보면 동네 형들이라도 패놓고 왔다”며 “어릴 때 어머니가 사정하고 다니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최 장관의 말솜씨는 화려하지 않다. 연구원을 오래 거쳐서인지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답변을 많이 한다. 장관 청문회 때는 창조경제 실현 계획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해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인들은 신중한 성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이용경 전 국회의원 등은 그를 ‘코끼리’라고 부른다. 이상훈 전 KT 사장은 “형만큼 순수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일할 때 밀어붙이는 힘도 세고…”라며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최 장관은 취임 직후인 지난 4월 둘째 아들 결혼식을 치렀지만 미래부 직원들에게 아무도 알리지 않았다. 롯데 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아들이 할인을 받아 예약한 호텔 예식장도 평범한 곳으로 옮겼다. 그의 첫째 아들은 미국 기업에서 신경세포 분야 연구를 하고 있다.

○ICT 외길 걸은 전문가

최 장관은 한국을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발전시킨 대표 인물 중 한명으로 꼽힌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네트워크 전공 박사학위 취득 후 1978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으로 입사했다. ETRI 원장을 지냈고 KAIST에선 학생들을 가르치며 ICT 외길을 걸었다.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시작됐다. 과학기술과 ICT 분야를 맡아 현재 창조경제 국정과제의 밑바탕이 된 지식창조 국가 등의 개념을 만들었다.

취임 5개월이 지났지만 최 장관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여전히 ‘창조경제가 무엇이냐’다. 포괄적 개념이다 보니 이를 어떻게 실현할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관련 얘기가 시작되자 최 장관은 “창조경제가 뭐냐고 묻는데 아이디어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면 사고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TRI 연구원 시절 개발한 전전자교환기(TDX) 얘기를 꺼냈다. TDX는 전화를 걸고 받는 신호를 전자식으로 자동 연결해주는 장치다. 1986년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서비스 등 국내 ICT 기술을 발전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그는 “반포아파트를 300만원이면 살 수 있던 시절인데, 유선전화인 백색전화기를 집에 설치하려면 100만원이 들었다”며 “집전화기 신청이 밀려 다 받아주지 못하던 시기에 이동전화 기술을 개발한다고 하니 모두가 믿질 않았다”고 말했다.

군사용으로 사용하던 미국 퀄컴의 기술을 가져와 대용량으로 키우고 퀄컴으로부터 로열티를 받게 된 과정을 설명할 때는 목소리에 힘까지 실렸다. 그는 “유럽 기술을 이용하면 로열티를 많이 내야 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한 것”이라며 “당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 따라오게 만든 것처럼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게 창조경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도전 문화를 확산시키면 국민도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며 “창조경제는 우리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패러다임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그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TRI “정말 탱탱했어”

수육 안주가 떨어질 즈음 강릉동치미막국수집의 다른 대표 메뉴인 통문어와 메밀전병이 나왔다. 중간 크기의 문어를 통째로 삶아 내놓은 이 집 문어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게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최 장관은 ETRI 원장 시절을 “정말 탱탱했다”는 말로 표현했다.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이 정책을 세우지만 연구개발(R&D)에 대해서는 ETRI 원장이 결정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원장 때는 연구원 400여명(전체 연구원은 2000여명)이 자신보다 월급을 더 많이 가져가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기도 했다. 기술 사업화에 성공하면 연구원들에게 일정 비율 로열티를 가져가게 만들었다. 그는 “연구원이 월급을 올려달라고 하면 쪽팔리는 거라고 말하며 설득했다”며 “처음에는 의심했는데 2년 지나고 다른 사람이 돈 버는 걸 보니 연구원들 눈이 반짝반짝해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연구원들이 R&D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그는 “R&D를 했으면 결과를 누군가 활용하게 해야 하는 게 기본”이라며 “케이스 스터디하듯 하는 것은 R&D라고 볼 수 없다”며 기술 사업화를 독려했다. 이어 “장관으로 와서 보니 출연연구원장들도 공무원한테 먼저 숙일 생각부터 하는 것 같다”며 “연구원들이나 원장 모두 열정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야생화 좋아하는 따뜻한 성격

최 장관의 취미는 등산이다. 타고난 건강체질을 자랑하지만 40대 후반부터는 건강검진 지표들이 갈지자를 그리며 위험 신호를 보냈다. 50세가 넘어 건강을 위해 등산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국내 이름 있는 산이라면 모두 가봤을 정도로 10년간 전국을 누볐다. 그는 “학교에 있을 때는 1주일에 두 번씩, 휴가 때는 1주일 내내 산을 다녀 대충 500곳쯤 오른 것 같다”며 “산에 오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데 그 맛이 좋다”고 말했다.

장관 취임 후에는 일요일까지 근무를 하기 때문에 거의 산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전 산악회 사람들과 관악산을 갔을 때는 8부 능선에서 힘이 부쳐 내려왔다. 산악회 사람들은 “서울 와서 사람 다 버렸다”고 했단다.

술잔이 돌고 취기 오르자 마지막 메뉴인 동치미 막국수를 시켰다. 메밀로 직접 뽑은 면발에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동치미 국물을 넣어 깔끔하고 시원을 맛이었다.

미래부는 이달 말 국민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고 서로 멘토링을 하면서 기술개발, 창업 등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창조경제 타운’ 사이트를 오픈할 예정이다. 이 사이트는 박 대통령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만들어졌다.

최 장관은 “아이디어를 내고 창업하려면 마케팅, 재무, 해외 진출 등 많은 게 필요하니 대기업 등 전문가들이 붙어서 도와주자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창조경제 문화를 국민에게 확산시키는 핵심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최문기 장관의 단골집 과천'강릉동치미막국수' 수육·통문어 등 대표 음식…동치미막국수 일품

강릉동치미막국수는 2005년 경기 과천시에 문을 연 맛집이다. 가게 입구에는 강원도 지도가 크게 걸려 있어 마치 동해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강릉 출신의 최양희 사장은 30년 전 강릉에서 ‘삼교리 동치미’ 집을 운영하는 친한 친구로부터 분가해 과천에 식당을 열었다.

수육, 통문어, 막국수 등이 대표 음식이다. 수육은 암퇘지 고기로 만들어 부드러운 맛을 내고 통째로 삶은 통문어는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메밀로 직접 뽑은 면발에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동치미 국물로 만든 동치미 막국수는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다. 최문기 장관 외에도 조순 전 부총리,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안철수 의원, 황교안 법무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등 유명인사들이 즐겨 찾는다. 동치미막국수(7000원), 비빔막국수(7000원), 수육 大(2만3000원), 통문어 大(3만5000원). (02)503-1199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관련기사<li>[한경과 맛있는 만남]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우린 영호남 커플…벽 깨고 화합해야 통일 쉬워져"</li><li>[한경과 맛있는 만남]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비주류 벽 넘다 보니 고개 숙이는 법 배웠죠"</li><li>[한경과 맛있는 만남] 홍기택 산은금융그룹 회장 "교수 때 생각, 현장 와보니 많이 바뀌더라"</li><li>[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언호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책 안읽으면 창조경제고 뭐고 없어요"</li><li>[한경과 맛있는 만남] 정유정 소설가 "선 굵은 소설 쓰니 '아저씨 독자' 다시 모이더군요"</li>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