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카지노, 해외 범죄자 은신처로

입력 2013-09-09 17:37
도피자금 마련 쉬워 중국 조폭 등 출입 잦아…경찰 수사망에도 벗어나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적색수배자(5단계 수배유형 중 최상위) 등 해외 범죄자들의 은신처로 전락하고 있다. 자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뒤 인터폴 지명수배 직전 관광비자로 한국 카지노에 잠입, 외국인 전용카지노 출입이 잦은 불법체류자나 외국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고리 사채업을 하며 감시망을 벗어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최근 서울 H호텔 카지노에서 중국인 K씨에게 도박자금을 빌려준 뒤 이를 갚지 않는다며 호텔 객실에 K씨를 감금한 혐의(폭력 등 처벌에관한법률위반 등)로 중국인 김모씨(42)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9일 발표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지난해 9월 지인들을 시켜 평소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던 베이징의 유흥주점 종업원을 살해한 뒤 관광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도피자금이 필요했던 김씨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은신처로 삼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돈을 탕진하는 경우가 많아 사채놀이를 하면 도피자금을 쉽게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K씨에게도 김씨는 도박자금 2억6000만원을 빌려주면서 선이자 10%를 받았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한국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은신하고 있는 해외 범죄자가 많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범죄자들이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머무르다 경찰에 적발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중국 조직폭력배 두목급 조직원 및 일당이 국내에 입국한 뒤 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나타났다는 첩보를 경찰이 입수해 수사에 나섰다. 이들은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진 인물로 중국 공안의 공조요청에 따라 경찰이 본격적으로 추적에 나섰고, 지난달 조직원 중 한 명이 공항에서 체포됐다.

해외 범죄자들이 외국인 카지노를 은신처로 선택하는 이유는 도피자금을 마련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중국인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카지노 출입이 잦아져 이들을 대상으로 일명 꽁지(노름판 뒷돈을 대주는 사채업자) 노릇을 하면 이자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6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이용자는 238만4000명으로 전년 대비 13.4% 증가했다. 카지노업계는 카지노 이용객의 10% 정도를 중국 등 외국인 노동자로 추정하며, 주말마다 2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찾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이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점도 은신처로 선택하는 이유다. 외국인 카지노는 내국인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경찰도 신고나 수사 요청이 없으면 들어가기 힘들다. 카지노 이용 외국인 중 불법체류자가 많아 범죄 신고율도 낮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에서 범죄를 저지른 뒤 곧바로 한국에 들어올 경우 출입국관리소에서도 적발할 방법이 없다”며 “외국인 카지노에서 범죄를 저지르다 경찰에 적발돼도 인터폴 적색 수배자가 아니면 해외에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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