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스토리(18)]'살아있는 간장史' 샘표, 위기극복 프로젝트 '연두' 탄생 스토리 "요리할땐 연두해요~"

입력 2013-09-09 09:34
수정 2013-09-09 09:46
끝모를 불황의 터널에서도 남다른 노력과 혁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우뚝 선 성공기업들의 숨은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발굴한 기업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도전과 위로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짠맛이 나는 흑갈색의 액체 '간장' 하나로 60여년 이상 소비자들의 입맛을 지배해온 곳이 있다. 6·25 전쟁이 터지기도 전인 1946년, 음식의 간을 맞추기 위해 공장을 세우고 여기서 콩으로 메주를 쑤어 간장을 만들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발효명가 샘표식품이 그 주인공이다.

'샘표'는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상표(특허청 기준)다. 남북 분단 이후 '살아있는 간장사(史)'로 불리는 이 굴지의 식품 대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전쟁 탓에 반강제로 사업을 접어야 했던 그 어려웠던 시절 이후 맞닥뜨린 가장 큰 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간편식이 늘고 외식 문화가 풍성해지면서 가정에서 소비되는 간장의 양이 확 줄어들고 있어서다. 소비자들의 식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갑판 위에 불이 붙었다. '제2 간장' '제 2먹거리' 개발이 절실했다. 그렇게 피나는 연구에 매달려온 현존 최고의 간장 전문가들은 5년 만인 2012년, 음식의 참맛을 살려주는 요리에센스 '연두'를 개발해 시장에 내놨다. 그동안 세상에 없었던 제품이다.

연두가 '제 2의 간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가정뿐 아니라 외식업체까지 한꺼번에 겨냥한 연두는 샘표가 60여년 만에 도전한 위기 극복 프로젝트다. 특히 핵심기술인 콩 발효 기술로 접근, 간장과 닮은 구석이 많다.

차세대 먹거리 발굴을 위해 뛰어든 수 백 명의 임·직원들보다 한 발 더 앞에서 진두지휘한 서동순 샘표 마케팅 이사(48)를 만나 생생했던 제품 개발 이야기를 들어봤다. 창립 67년 만에 다시 터진 위기 극복 스토리의 첫 장이다.

◆ 샘표, 간판 스타 '간장'의 부진…'제2먹거리 개발하라'

샘표는 국내 시장 규모 약 2500억 원의 간장 시장에서 49%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간장 업계의 대표 기업이다. 간장이라는 한가지 아이템으로만 연 매출 1000억 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간장에 있어서만큼은 '샘표'와 '샘표가 아닌 기업'으로 나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난 60여년간 간장을 비롯한 장 종류는 샘표를 먹여 살린 효자 상품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 장류 시장이 정체기를 맞았다. 업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1조 원대까지 치솟았던 장류 시장은 현재 7000억 원대로 주저 앉은 상태다. 소스류 시장이 성장하고 소비자들의 외식 증가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장류 매출이 샘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던 비중도 최근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최근에는 약 55%까지 내려왔다. 장류 하나로 먹고 살던 기업이 받아든 성적으로는 위기의 신호였다는 것이 서 이사의 설명이다.

"간장을 비롯한 장류 매출이 연간 1000억 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어요. 장류의 매출 비중도 감소하고 있는 상태고요. 소비자들이 가정에서 식사하는 비중이 줄어들면서 찾아온 변화입니다. 더이상 장류에만 기대면 안된다는 신호가 온 거지요. 회사 내부적으로 장이 아닌 또 다른 먹거리에 대한 개발이 시급하다고 판단했어요."

최근 조미료 시장의 화두는 화학 성분을 쓰지 않고 맛을 내는 제3세대 자연 조미료들이다. 멸치 쇠고기 등 원물을 갈아 맛내기를 시도하는 천연 조미료가 주부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현재 시장 규모는 약 300억 원 수준으로 CJ제일제당의 '산들애'와 대상의 '맛선생'이 양분하고 있다.

화학 성분을 쓰지 않는다는 점은 천연 조미료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멸치와 쇠고기 등이 원재료의 맛을 변하게 한다고 지적해왔다. 신제품 개발에 대한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는 게 서 이사의 설명이다.

"조미료의 주원료로 쓰이는 멸치 쇠고기 해산물 등은 고유의 맛이 있는 것들입니다. 이 재료들로 만든 조미료를 음식에 넣으면 멸치 쇠고기 해산물 맛이 섞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콩은 자기 고유의 맛과 냄새가 없어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하게 된 겁니다."

조미료의 원재료로 콩을 택한 건 오랜 기간 콩 발효 기술만 연구해 온 샘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콩 발효 액 연두를 완제품으로 만들기 위해선 푹 우려낸 콩 단백질이 수용성으로 변하면서 액상이 돼야 한다. 단백질이 '펩타이드 아미노산'까지 변해야 기존 조미료와 다른 맛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 추출해내는 기술이 식품 회사의 차이를 결정한다.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변해야 다른 맛과 차이가나면서 우리 고유의 '감칠 맛'을 낼 수 있는 거예요.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바꾸는 기술이 어려운 게 아니라 잘 바꾸는 게 어려운 겁니다. 연두는 오랜 기간 발효 기술만 연구해 온 샘표에서만 나올 수 있는 제품인 거지요."



◆ 1차 론칭, 처참한 실패…소비자 '요리 에센스' 뭔지 몰라

마침내 2010년 완제품이 나왔다. 그러나 연구진의 가장 큰 고민은 따로 있었다. 요리 에센스로 불리는 연두는 엄밀히 말하면 조미료가 아니기 때문에 시장에 어떻게 자리잡아야할지가 문제였다.

흔히 조미료는 멸치 쇠고기 등 원재료의 맛을 바탕으로 음식 맛을 돋게 하거나 첨가해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연두는 원물의 맛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음식 맛을 '살려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조미료 카테고리에 넣을 수 없다는 게 샘표의 고민이었다.

예를 들어 일반 조미료는 흔히 국물 맛을 내는 데 쓰이지만, 연두는 국물 맛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침 등에 더 적합하게 쓰인다. 한마디로 열심히 물건을 만들었지만 이것을 소비자에게 어떻게 설명할지가 샘표의 고민이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있었어요. 소비자들한테 '이것은 조미료다'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설명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일단 어쩔 수 없이 조미료의 개념으로 시장에 내놓게 됐습니다."

요리 에센스라는 카테고리를 알리기 위해 백화점, 마트 등 주부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 다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입 소문을 냈다. 소비자들에겐 신개념 조미료라고 설명했다.

피드백은 차가웠다. 소비자들이 기존 조미료 특유의 감칠 맛에서 쉽게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무색 무취의 콩을 원재료로 썼지만 발효 과정에서 아미노산이 잘못 연결되면 또 다른 냄새가 생긴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소비자들은 요리 에센스라는 카테고리를 인지하지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현실은 더욱 처참했어요. 연두로 기존 조미료들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자체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기존 조미료 맛에 길들여져 있었던 거지요. 조미료는 일종의 주부들의 노하우인데 그걸 바꾸기 쉽지 않죠. 마케팅 전략, 제품 완성도 등을 싹 바꿔 2차 론칭을 준비해야했습니다."

◆ 2차 론칭, 월 매출 10배 껑충…'설명하지 말고, 먹게하자'

2012년 다시 새로운 연두를 출시했다.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또 다른 발효기술을 적용했다. '발효취(臭)'를 없애고 색깔도 맑게 바꿨다. 샘표에선 거의 다른 제품이라 말할 정도로 연구진들의 공이 들어갔다.

조미료와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에게 요리 에센스가 무엇인지 인지시키는 것도 새로운 과제였다. 샘표는 연두가 일반 조미료와 함께 묶이면서 기존 조미료 제품들을 이길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설명할 수 없다면 먼저 맛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리 에센스는 조미료가 아니란 것을 소비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올 연말이 되면 샘플링으로만 시장에 내놓은 양이 100만 병을 돌파해요. 소비자들이 직접 먹어보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연두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소비자들로부터 반응이 왔다. 지난해 4월 제2차 론칭 이후 연두 매출은 1차 론칭 때보다 10배 이상 뛰었다. 샘표는 이 같은 차이가 난 이유를 고객들이 요리에센스와 조미료의 차이를 서서히 인지하기 시작한 신호로 보고 있다. 샘표에 따르면 연두의 재구매율은 80% 이상으로 소비자 반응이 확 달라졌다.

"제1차 론칭 때는 연두 월 매출이 평균 1억5000만 원 안팎이었어요. 지난해 2차 론칭 후 테스트 마켓을 진행했는데 소비자 반응이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재구매율이 늘기 시작했고 TV 광고가 함께 나가면서 인지도도 높아졌습니다. 현재 연두의 월 평균 매출은 10억 원 이상입니다."

샘표가 연두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는 이유는 시장의 성장 속도다. 제3세대 조미료 시장으로 불리는 천연조미료의 국내 시장 규모는 현재 300억 원 수준으로 5년 이상 걸려 이뤄냈다. 그러나 조미료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연두는 재출시 1년 만에 연 매출 150억 원을 눈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 샘표의 설명이다.

"저희는 성공 가능성을 시장의 성장 속도에서 보고 있어요. 주부들을 믿고 있는 거죠. 천연 조미료 시장이 화학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는 콘셉트로 뜨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원재료의 한계는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요리에센스라는 카테고리를 주부들이 이해하기 시작하면 연두의 성장 속도는 더 빨리질 겁니다."





◆ 식품업계 최초 '월드클래스 300'…스페인 진출도
연두의 탄생은 샘표의 콩 발효 기술이 있기에 가능했다. 아미노산이 맛의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아미노산을 잘라 다른 맛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곧 업체별 경쟁력을 나타낸다.

샘표는 식품 업계로는 최초로 중소기업청 지정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 기업으로 선정됐다. 월드클래스 300은 정부에서 2020년까지 세계적인 기업 300개를 육성하기 위해 기술력과 성장가능성을 가진 업체를 발굴해 기술, 마케팅, 인력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샘표는 이를 통해 정부로부터 5년간 총 75억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주로 아미노산 및 미생물 개발 특허를 내는 데 쓰일 겁니다. 더 많은 특허를 확보해야 연두 처럼 기존 시장에 없던 제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 기업들과의 미생물 특허 싸움이 치열해요. 이걸 지켜내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정부도 이에 공감한 것이고요."

샘표 임직원들은 연두가 제2의 간장과 같은 제품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간장 처럼 샘표 고유의 경쟁력인 콩 발효 기술이 적용된 데다 한국 고유의 맛과 맞닿아 있어 롱런할 수 있는 요인을 갖췄기 때문이다.

샘표는 연두를 갖고 해외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첫 해외진출 국가로는 스페인을 택했다. 스페인의 요리가 원재료를 살린 것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세계적인 음식문화연구소인 스페인의 알리시아연구소와 손잡고 연두를 이용해 만들 수는 요리법을 개발 중이다.

"현지 교민들에게만 판매해선 큰 시장을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현지인들을 공략해야죠. 일단 반응은 좋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잡지 미슐랭으로부터 선정된 쉐프들이 연두를 이용한 요리를 아예 따로 메뉴로 내놓을 정도입니다. 주로 고기를 우려 맛을 내던 서양인들이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맛이니까요."

샘표는 연두가 기존 된장 등의 장류와는 달리 외국인들도 부담 없이 소화할 수 있다는 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샘표는 내년 연두 매출 100% 성장을 내부 목표로 세웠습니다. 300억 원까지 내다보고 있어요. 요리에센스 하나로 3세대 조미료 시장 전체 시장 규모와 맞먹는 결과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온 직원들이 연두에 매진하고 있는 만큼 꼭 이뤄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경닷컴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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