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박병엽 팬택 부회장, 상대방 끝까지 경청하는 '친화력의 승부사'…채권단 끈질기게 설득해 1565억 유치 성공

입력 2013-09-03 17:42
수정 2013-09-04 00:54
CEO 오피스

끈기와 집념의 리더십 박병엽 팬택 부회장

박 부회장 친화력의 밑바탕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지난달 거의 매일 밤잠을 설쳤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갓 졸업한 상황에서 마케팅 전쟁을 벌이려면 ‘실탄’이 필요한데 헤쳐갈 길이 막막한 첩첩산중이었기 때문이다. 올 2월 퀄컴에서 2300만달러(약 250억원), 5월 삼성에서 530억원을 유치했지만 큰 전쟁을 치르기엔 실탄이 한참 모자랐다.

자금을 유치하려고 대주주인 은행권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이해가 엇갈려 좀체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젠 오너도 아니지만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은 여전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해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농협, 대구은행으로부터 1565억원(상환분을 빼면 825억원)을 유치했다.

흔히 박 부회장에 대해 ‘붙임성 좋은 승부사’라고 말한다. 이번 은행권 자금 유치도 붙임성 좋은 박 부회장이 끈질기게 설득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팬택 임직원이 꼽는 그의 첫 번째 강점은 친화력도 아니고 승부사 기질도 아니다.

박 부회장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좀 더 들어보자”는 말을 종종 듣는다. 누군가 쓴소리를 하는데 배석한 간부가 끼어들면 박 부회장은 제동을 건다. “A상무, 잠깐만. OOO님 얘기를 좀 더 들어 보자.” 한 임원은 “남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게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 팬택 임직원이 꼽은 박 부회장의 최대 강점)

박 부회장은 중요사안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책임자의 설명을 경청하고 자기 의견을 밝힌 뒤 토론을 유도한다. 결론이 나지 않으면 “내 생각이랑 B소장 생각이 다르니 좀 더 고민해보고 다음에 다시 토론하자”는 식으로 말한다.

팬택의 한 간부는 “토론하다 보면 초반에는 내 전문 분야니까, 내가 이기는 것 같은데 계속 토론하다 보면 밀리는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전혀 고민하지 않은 부분까지 박 부회장이 거론할 때면 ‘언제 저런 것까지 고민했나’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2000년대 후반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갈 때도 그랬다. 연구소 박사급 기술자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피처폰이 잘나가는데 굳이 검증 안 된 스마트폰으로 넘어갈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었다. 이때도 박 부회장은 수차례 토론을 거듭한 끝에 연구원 스스로 수긍하도록 했다.

박 부회장에게 경청은 정보를 축적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보기술(IT)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시장 상황도 급변하는 터라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 뒤 얘기를 듣는다면 실수할 위험이 커진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의 얘기를 듣고 합당하면 기꺼이 수용한다.

박 부회장이 현장 책임자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오늘 내린 결정을 내일 번복하지 못하면 책임자 자격이 없다.” 뭔가 잘못 됐을 땐 과감히 시인하고 결정을 번복해 다른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본인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그의 친화력은 널리 알려진 그대로다. 박 부회장은 친한 사람을 만날 때 손을 잡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와락 껴안기도 하고 볼을 비비기도 한다. 몇 차례 만나보고 얘기가 통한다 싶으면 스스럼없이 “형님” “오빠” “OO형” “자기”라고 부르며 마음의 벽을 허문다.

그의 집무실을 방문하면 색다른 경험을 한다. 박 부회장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기도 하고, 헤어질 땐 대개 엘리베이터까지 나와 배웅한다. 손님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탁하러 온 사람이든 도우러 온 사람이든 이런 식으로 맞이하고 배웅한다.

처절했던 삶은 기업인으로서의 친화력를 갖추는 밑바탕이 됐다. 박 부회장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가진 것 없는 놈이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 박 부회장 친화력의 밑바탕)학연 지연 혈연 등 이렇다 할 ‘끈’도 없이 사업하다 보니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게 체질화됐다.

승부사 기질도 널리 알려졌다. 박 부회장은 고비 때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승부를 걸었다. 삼성, LG와 휴대폰 싸움이 본격화하자 사재를 털어 현대큐리텔과 스카이를 인수해 덩치를 키웠고, 법정관리 위기에 처했을 땐 자기 주식과 직위를 내던져 위기를 막았다.

회사가 자금난에 빠졌을 때 다들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전국을 돌며 주주들에게 채권 상환을 유예해 달라고 호소했다. 자신의 주식을 포기하겠다면서 회생 방안을 설명했다. 주주들은 설명을 들은 뒤 그의 진정성을 믿어줬고 “힘내라”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팬택이 법정관리를 피하고 워크아웃으로 갔던 것은 박 부회장의 집념과 진심이 통했기에 가능했다. 주위에서 “그 많은 주주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고 말할 때 포기했다면, 자기 주식을 움켜쥐고 욕심을 부렸다면 주주 동의를 받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박 부회장의 과감한 결단에 대해 주위에서는 “과감하지만 무모하진 않다” “오히려 소심하기에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제3자의 눈에는 과감한 모습만 보이겠지만 밀어붙이기 전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따져 결론을 내린다는 것.

그에 관해 얘기할 때 ‘기업가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무선호출기와 휴대폰으로 수천억원대 돈을 번 뒤에도 회사를 팔거나 지분을 처분하지 않았다. 번 돈으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항상 사업을 택했다. 돈이 아니라 사업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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