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아일랜드 시인들

입력 2013-09-01 18:08
수정 2013-09-01 22:4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아일랜드에는 문인과 예술가가 유난히 많다. 한국 인구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네 명이나 나왔다. ‘나 이제 일어나 가련다 이니스프리로’라고 노래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페이머스 히니’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이름난 시인 셰이머스 히니,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와 조지 버나드 쇼가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 오스카 와일드, 숀 오케이시, 올리버 골드스미스, 제임스 조이스도 이곳 출신이다.

음악에서도 영화 ‘반지의 제왕’ 삽입곡 ‘되게 하소서’를 부른 엔야를 비롯해 벤 모리슨, 메리 블랙, 크리스티 무어 등 스타들이 즐비하다. “남아일랜드에서는 음악가들이 환영을 받고, 북아일랜드에서는 시인들이 환영을 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북아일랜드 시인들의 활약이 눈부신 이유는 뭘까. 이들은 오래 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영어로 글을 썼지만, 특유의 감각과 영혼을 담아내며 음악적인 언어미학을 일궜다. 가톨릭 수사들이 기록한 구전문학의 콘텐츠까지 풍부했다. 예이츠가 “유럽에서 가장 풍요로운 이야기의 보고”라고 말한 것도 이런 연유다.

지난주 세상을 떠난 히니 역시 “옛날의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단테, 브로드스키는 물론 유럽 여러 나라와 잉글랜드 문학의 장점까지 두루 몸에 받아들인 덕분”이라고 생전에 설명했다. 그는 비극적인 아일랜드 역사와 신화, 언어와 문학의 바탕 위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민족의 조화를 추구하려 애썼다. 초기엔 지역적이고 저항적인 시에 주력했다. 영국 출판업자가 영국 시인선집에 그의 시를 넣으려 했을 때 “내가 반대한다고 해서 놀라지는 마시오. 왜냐하면 내 여권은 초록색이니까. 우리는 한 번도 여왕을 위해서 건배한 적이 없소”라며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러나 대립의 경계를 넘어선 덕분에 “절망과 고뇌의 역사 속에 누적된 쓰라린 정경을 형상화하되 편협한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고 탈식민지적 참여정신과 빼어난 서정성을 동시에 포용함으로써 시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극찬과 함께 노벨상을 받았다. “두 개의 양동이는 하나보다 쉽게 운반됐다/ 나는 그 두 개 사이에서 자라났다”던 그가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땅에 대한 뿌리의식이었다. 이는 전통을 복원하면서도 문화 충돌의 한계까지 뛰어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타계 소식을 듣고 옛 시집을 다시 펼치다가 짧고 강렬한 시구 하나를 발견했다. 땅을 파는 도구는 삽이나 괭이만이 아니라는 것도 새삼 알았다. ‘내 손가락과 엄지 사이/ 웅크린 펜 하나 놓여 있다./ 나는 이걸로 땅을 파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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