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가-오영호 KOTRA 사장
사회=최명수 문화부장
오영호 사장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믿음, 중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한국도 사회적 신뢰 복원 시급”
조정래 작가
“삶을 총체적으로 담는 게 소설인데 작가들, 생존 문제인 경제 도외시…‘정글만리’ 소재 중국이 우리 미래”
《태백산맥》《아리랑》《한강》 등 대하소설을 통해 뜨거운 작가 정신을 발휘해온 소설가 조정래 씨. 그가 지난 7월 발표한 《정글만리》(해냄)가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동안 발표한 대하소설이 과거사를 건드렸다면 이번엔 독자들을 미래로 이끈다. 그가 말하는 한국의 미래는 중국이다. 이 소설은 중국을 무대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맨들 이야기다.
세계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인을 돕는 곳인 KOTRA의 오영호 사장은 주미 대사관 상무관 출신의 미국통이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을 수십차례 드나들며 공부해왔다. 지난해 11월에는 시진핑 시대를 맞아 중국 경제와 사회를 다룬 책 《미래 중국과 통하라》(메디치)를 펴냈다. 문화와 경제라는 다른 곳에서 중국의 현실과 한국의 미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눴다.
▷두 분은 처음 만나셨나요.
조정래 작가=《정글만리》를 쓰기 위해 취재하는 동안 중국 관련 책을 80권쯤 읽었습니다. 그런데 서구 학자들이 쓴 책은 중국을 ‘미개하다’고 깎아내리기만 하고, 중국 작가들은 검열 때문인지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국인이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 책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뛰어난 책 두 권이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용과 춤을 추자》와 오 사장의 《미래 중국과 통하라》였죠.
오영호 사장=저도 《정글만리》를 아주 꼼꼼히 읽어봤습니다. 쭉 한번 훑어본 후에 밑줄 쳐가며 읽었죠. 소설로도 미래 중국을 볼 수 있구나 싶어 깜짝 놀랐어요. 중국인의 속성도 쉽게 설명하셨죠.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 화교권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언제부터 중국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조 작가=1990년에 《아리랑》을 쓰기 위해 중국에 취재를 갔는데, 당시 제가 갖고 있던 의문은 ‘소련은 무너졌는데 왜 중국은 건재할까’였어요. 취재하다 보니 답이 며칠 만에 나와요. 소련은 당시 달걀 하나 구하려고 몇 백m씩 줄을 섰지만, 중국 가게엔 사탕 등 식료품은 물론 생활용품인 샴푸까지 꽉 들어차 있었어요. 개혁·개방 10년의 성과로 물적 토대가 생긴 거예요. 10년의 결과가 이렇다면 20년, 30년 지나면 어떻게 될까. 소재를 구한 거죠. 그때부터 《정글만리》는 20년 넘게 제 머릿속에 있었어요.
오 사장=중국과 본격적으로 일한 게 2002년께부터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나 고전을 배워 중국을 매우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더라고요. 일제 강점기 이후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차단돼 있어 색칠된 중국 이야기만 담겨 있었습니다. 답답해서 틈틈이 공부하면서 중국 사람들을 만났죠.
▷한국 작가들은 경제소설을 잘 쓰지 않는데요.
조 작가=일단 작가들이 경제를 잘 몰라요. 또 문학은 존재나 내면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돈에 대해 얘기하면 추하다든가, 문학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든가 하는 식의 배타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설이라는 게 삶을 총체적으로 그리는 것 아닙니까. 인간 사이에 끊임 없는 사회적, 개인적 갈등이 다 돈 문제잖아요.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현대성을 띤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비롯해 수없이 돈 얘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관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자체잖아요. 중국 또한 우리의 심각한 생존 문제고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최강국이 될 수 있을까요.
오 사장=경제 총량 지표만이 아닌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굉장히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G2(주요 2개국)를 넘어 G1이 못 될지도 모르고요. 사회가 투명해지고 의식 수준도 세계 기준에 맞아야 진정한 G1이 되는 건데, 나날이 발전하는 하드웨어를 못 따라가는 중국의 소프트웨어는 좀 아쉬워요.
조 작가=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우리가 중국에 갖는 일반적인 생각이 ‘짝퉁천국’ ‘게으르다’ ‘더럽다’ 같은 거예요. 그야말로 표피적이죠. 30~40년 전에 서양 사람들이 우리 보고 영원한 미개 국가라고 경멸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1950년대 후반에 영국 기자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일보다 어렵다’고 했어요. 당시로선 맞아요. 그런데 경제 개발하고 민주주의 하는 데 몇 년 걸렸습니까. 저개발 국가를 계몽의 대상으로만 보는 게 그들의 한계입니다. 한 민족 국가가 일심동체로 자각해서 행동할 때 어떤 폭발력이 일어나는지를 보지 못해요.
▷중국을 취재할 때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습니까.
조 작가=중소기업 사장, 대기업 상사맨들 할 것 없이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다들 한국에서 엘리트인데 그 매연 속에서 상품 하나 팔려고 중국어 공부하고 연습하고…. 중국 사람들이 한국인을 보고 선비 상인이라고 해요. 일본 사람들은 중국말 잘 안 하고 통역을 씁니다. 소설 속 전대광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중국에 있는 한국인의 총체예요. 저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한국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오 사장=《정글만리》에서 우리 기업들이 꼭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중국 사회가 발전하는 데 우리가 진심으로 기여한다는 생각이 필요해요. 말하자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 거죠. 더구나 시진핑은 등장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는 말을 몇 차례 했고 그게 중국의 정책으로 가시화될 겁니다. 중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들과 같이 갈 수 있어요. 무역의 날에 훈장을 주는데, 한 번은 한국에 정말 관심이 많은 중국 관료에게 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때부터 영원한 ‘한국 팬’이 됐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 시장에서 벌이는 경쟁은 어떻게 보십니까.
조 작가=일본은 이미 중국 시장에서 도태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역사문제가 겹쳤어요. 일본이 스스로 왕따가 된 거죠. 헌법까지 고치면 아마 전 세계에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일본의 보수화가 오히려 우리가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오 사장=지금까지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 1위는 일본이었는데,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통계로는 한국이 일본을 앞섰습니다. 엔저임에도 정치적, 감정적인 것까지 섞인 결과지요. 하지만 우리에겐 일본도 없어서는 안 되는 나라입니다. 일본의 우경화가 안타까운 이유죠. 그렇다면 서로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규제나 고임금 때문에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이 동남아나 국내로 유턴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오 사장=그런 업체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우리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이었습니다. 지금은 중국으로 바뀌었죠. 그렇다고 미국 시장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는 ‘테스트 베드’ 역할을 했어요. 지금은 중국이 그 역할을 합니다. 또 경쟁력을 강화해 정면 돌파하는 기업도 많고요. 일부 기업이 떠난다고 중국 시장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조 작가=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중국의 정규 근로자 외에도 농민공 2억5000명이 따로 있습니다. 이들이 지금 도로를 포장하고 고속철을 놓으며 밤새 일하고 있어요. 미국이나 유럽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밤 12시까지 일 안 하잖아요. 중국은 합니다. 잘 살겠다는 목표가 있어서예요.
오 사장=지금 말씀하신 부분에서 굉장히 중요한 게 있습니다. 우리가 경제 성장할 때 결정적인 뒷받침이 된 게 ‘사회적 합의’였어요. 엄마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누나가 가발 공장에 가고 그 돈으로 동생을 공부시키면 집안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회적인 신뢰가 있었죠. 그 중요한 부분이 약해진 게 큰 문제입니다. 다시 한번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작업을 한다면 응집력 있게 잘 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과 경제가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할 텐데요.
조 작가=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좋지 않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배울 게 많습니다. 일본 기업은 문학에 무조건 지원합니다. 대기업들이 소리 없이 돈을 지원하고 결과를 바라지도 않아요. 전문 번역가도 여러 명 붙여줍니다. 일본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한 배경에는 기업의 지원도 분명 있어요.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쓰면 일본은 세계에서 문화대국 대우를 받고, 기업이 장사할 때도 도움이 되는 거죠. 그게 경제와 문화의 선순환입니다.
정리=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조정래 소설가
일생을 문학에 바쳐온 한국의 대표적 작가다. ‘20세기 한국 현대사 3부작’인 대하소설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은 1300만부(합계)가 팔려나갔다.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나 보성고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대하소설 3부작을 비롯해 《인간연습》《허수아비춤》등의 장편소설과 《누구나 홀로 선 나무》《황홀한 글감옥》등의 산문집을 발표했다.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
◆오영호 KOTRA 사장
1952년 서울 출생.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경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들어가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통상·산업·자원에너지 분야를 맡아 일했다. 대통령 비서실 산업정책비서관, 산업자원부 1차관 등을 지냈고 이후 서강대 교수, 무역협회 부회장을 거쳤다. 《미국 통상정책과 대응전략》《수출한국, 프레임을 바꿔라》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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