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양적완화 조기 축소 움직임으로 인해 신흥국 주식 및 외환 시장이 요동치면서 적정 외환보유액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3297억1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치로 불어났지만 더 늘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선 이견이 많다. 우선 최소 4000억달러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전문가들은 한국이 소규모 개방 경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외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외환보유액 곳간이라도 넉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외환보유액 추가 확대에 부정적인 전문가들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으로 볼 때 적정 규모를 넘어선 상태에서 효용보다 비용이 더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외환보유액을 쌓는 과정에서 통화안정증권 발행이 늘면 이자비용이 발생하고 외환보유액을 안정성 위주로 운용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주 맞짱토론은 외환보유액 확대 바람직한가를 놓고 김정식 연세대 교수(확대 찬성)와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장(반대)이 각각 찬반 주장을 펼쳤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
찬성- 외풍에 구조적 위험 노출…국가 비상금 넉넉히 채워야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미국 학자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은 항상 외환보유액의 축적비용을 강조한다. 물론 외환보유액을 늘리자면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통화량이 늘어나고 금리가 높아질 수 있으며, 그 운용수익이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외환보유액 축적의 이익을 생각하면 수익이 비용보다 더 큼을 알 수 있다. 외환위기를 피할 수 있어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있고,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를 피할 수 있다. 여기에 국부가 늘어나 대외적으로도 강건한 국가가 될 수 있다. 중국과 일본, 대만과 같이 외환보유액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수익이 비용보다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을 현 수준보다 더 늘려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한국이 자본시장을 자유화한 신흥시장국이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이론에서는 국가가 변동환율제도를 선택할 경우 외환보유액을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외환이 부족하게 되면 환율이 상승해서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하고 환차익을 고려한 자본 유입이 발생해 외환 부족을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을 자유화한 신흥시장국에는 이 이론이 맞지 않는다.
신흥시장국은 선진국과 달리 비교환성 통화, 즉 국제통화가 아닌 통화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은 외환이 부족해질 경우 양적완화 정책과 같이 통화를 더 찍어내 외환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신흥시장국은 다른 나라로부터 외환을 빌려야 하고 빌려주지 않으면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환율이 올라 외환을 공급받을 수 있으나 그 사이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美 양적완화로 유입된 외국인 자금 유출 대응
또한 자본자유화를 한 신흥시장국은 구조적으로 외환위기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신흥시장국은 성장률이 높고 금리가 높아 항상 과도한 자본 유입을 겪게 된다. 그리고 외환 유입으로 환율이 하락하고 경상수지가 악화되면 곧 유입된 외환은 유출(sudden stop)되면서 외환 부족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통화량이 늘어나 자산가격 버블이 발생하고 유출될 때는 버블이 붕괴된다.
따라서 자본자유화를 한 신흥시장국은 외화유동성을 충분히 준비하거나 혹은 자본 유입을 규제해야 외환위기를 피할 수 있다. 한국도 1992년 자본자유화를 한 이후 이러한 과정을 반복했다. 선진국 경제로 착각해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고 과도한 자본 유입도 규제하지 않아 1997년과 2008년 두 번의 외환 부족 사태를 경험했다. 최근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은행세를 부과하는 등 과도한 자본 유입을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외국인의 주식 및 채권 투자자금이 많이 유입된 경우 유출에 대응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늘릴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현재 33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이 충족한 수준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충족한 수준의 외환보유액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지만 단기외채와 수입액, 그리고 외국인 주식 및 채권 투자금액을 고려한 기준이 일반적이다. 한국의 단기외채는 비록 과거에 비해 줄었다고 하나 1220억달러 수준에 있다. 그리고 3개월 수입 규모는 1350억달러, 외국인 주식 투자와 채권 투자 금액의 33%는 약 1530억달러다. 이를 합하면 충족한 외환보유액은 4000억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국내로 추가로 유입된 외환만도 2800억달러에 달한다. 비록 외국인 주식 투자비중이 과거와 같이 30% 수준에 있지만 그 절대금액은 크게 늘어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또한 이 기준에는 내국인의 외환 유출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고려할 경우 충족한 외환보유액 수준은 이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충족한 외환보유액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표인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을 봐도 한국은 그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중국은 15%인데 비해 우리는 비록 과거 50%를 넘어선 때에 비해서는 감소했지만 여전히 39%로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높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외환을 과다하게 보유하지 않고 민간 금융회사가 외환을 보유하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외환위기로 환율이 오르고 있는데 외환을 시장에 공급해줄 민간 금융회사가 없기 때문이다.
단기외채 비증 등 고려…4000억弗 넘어야 충분
세 번째는 한국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이제 이웃 국가에 스와프(통화교환)라는 명목으로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일본과는 정치적 상황으로 스와프를 할 수 없게 됐다. 미국, 중국과 스와프를 할 수밖에 없는데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3000달러인 우리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미국과 중국에 언제까지 돈을 빌려달라고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 통화는 국제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통화이기 때문에 명목이 스와프이지 돈을 빌려주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국부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도 외환보유액을 늘려야 한다. 중국과 일본은 국부를 늘리는 방법으로 환율을 높여 수출을 증대시키는 중상주의 정책을 사용해서 외환보유액을 축적했다. 일본은 1조3000억달러, 중국은 3조4000억달러를, 그리고 대만도 41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들 나라의 외환보유액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과 비교해 보면 중국은 2.18배 늘어났는데 우리나라는 1.25배 증가해 동아시아 4개국 중에서 가장 적게 외환보유액이 늘어났다. 외국인 주식 투자자금은 가장 많이 들어왔는데 외환보유액은 가장 적게 증가한 것이다. 국부를 늘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내수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을 통하는 수밖에 없다. 수출에서 환율은 중요하다. 외환보유액을 늘려 국부를 증대시켜야 한다.
몇년 전 IMF의 일본인 부총재가 한국이 왜 외환보유액을 늘리려고 하는가하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일본은 왜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국제금융은 전략적 게임이다. 상대방 국가가 외환위기를 당하면 외환보유액을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는 돈을 빌려주면서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이 왜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것을 비판하는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 김정식 연세대 교수 >
반대- IMF기준 이미 적정수준…효용보다 비용이 더 들어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조만간 종료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부 신흥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다. 최근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에서 큰 폭의 외자 유출로 주가와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신흥국 전체로 위기가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외환보유액을 지금보다 더 늘려 자본 유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외환보유액은 위기의 예방은 물론 수습 과정에 필수적인 국가 비상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외환보유액을 추가로 확충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 필자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은 이미 충분한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 잔액은 약 3300억달러로 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많다. 외환보유액의 적정 규모에 대해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국제적 기준은 없으나 통상 그 나라의 수입액, 통화량, 단기외채 또는 자본 유출입 규모 등에 부합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수입액 등 경상외환 지급액의 6개월분으로 통상적인 기준의 2배 이상이다. 또 1년 이내에 갚아야 할 단기외채보다 훨씬 많아 기도티-그린스펀 룰(아르헨티나 재무차관인 지낸 파블로 기도티와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제시하는 적정 수준 외환보유액)을 만족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여러 가지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시한 기준에 비춰보더라도 적정 범위 내에 있다.
통안증권·외평채 발행시 이자지급·국가채무 증가
어떤 기준에 비춰 보아도 현 외환보유액 수준은 비상시 외화 유동성을 지원하는 데 부족하지 않다. 적정 규모와 관련해 중요한 점은 위기 예방과 국가 신인도 유지를 위해 기본적인 필요 수준을 만족하느냐의 문제이지 적정 수준보다 얼마나 더 많은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적정 규모보다 좀 더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 문제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운용수익 등 자연적인 증가분을 넘어서 인위적으로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통화량을 통화안정증권 발행을 통해 흡수하므로 통안증권의 이자지급 비용과 외환보유액 운영 수익률의 차이만큼 적자가 발생한다. 정부가 외평채 발행을 통해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경우에는 국가 채무가 증가하고 재정 건전성을 해친다. 외환시장에서 외환을 매입해야 하므로 환율의 시장결정 메커니즘도 손상을 입는다. 외환보유액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유동성과 안전성 위주로 운영하는 특성상 수익성을 일정 부분 희생하지 않을 수 없다.
외환보유액으로 위기를 막을 수 있다면 외환당국이 마땅히 감내해야 할 정책비용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민간 부문에서도 보이지 않는 비용이 크다. 국가 전체의 외화자산을 외환당국이 보유하는 만큼 외화자금이 민간 부문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국가 전체적으로 외화자산 운영에 비효율이 증대된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외환보유액은 충분한 반면 민간 부문은 만성적인 외화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 순채권국으로서 외화 자산이 외화 부채보다 많으나 대부분의 외화 자산은 외환당국이 보유하고 있고 민간 부문은 외화 부채가 외화 자산보다 더 많다. 외채에 포함되지 않는 외국인의 주식투자 자금까지 고려하면 민간 부문의 외화 유동성 부족은 더 커진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해외로 빠져 나가거나 은행의 해외 차입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민간 부문의 외화 유동성 사정이 악화되고 환율은 급등한다. 이 경우 당국이 시장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민간에 외화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만약 민간 부문이 충분한 외화 자산을 갖고 있다면 당국의 개입이 없어도 외부 충격이 있더라도 시장 복원력은 클 것이다. 모자라지도 않는 외환보유액을 더 늘릴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민간의 외화 자산 규모가 커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민간에 외화유동성 공급…시장안전망 튼튼히 해야
외환보유액만 많으면 위기로부터 안전하다고 믿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과거 1990년대 후반 브라질과 러시아의 경우 재정수지 및 경상수지 적자 확대로 외국 자본이 급격히 유출되자 외환보유액이 몇 달 사이 절반 가까이 급감했다. 최근 인도의 경우에도 적정 수준을 훨씬 넘은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지만 Fed의 양적완화 축소 영향으로 주식 및 외환시장이 큰 혼란에 빠졌다. 기초경제 여건이 양호하지 못한 국가의 경우 외환보유액이 많아도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예다.
한국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과거 위기 경험국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 등으로 환율이 급등했다. 당시 외환당국이 민간에 큰 폭의 외화 유동성을 지원하고도 외환보유액이 2000억달러 이상 남아 있었으나 시장의 불안심리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2000억달러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Fed와 체결한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가 시장 안정에 큰 도움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설령 지금보다 더 큰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어도 시장 불안감이 팽배하면 유동성 고갈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금융시장의 혼란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외환보유액 규모의 증가에 비례해 시장 불안이 최소화될 수 있다고 과신해서는 안 된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외환보유액 규모가 아니라 어떻게 강한 외환 시스템을 구축하는가 하는 점이다. 적정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것은 강한 외환 시스템의 일부이지만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양호한 경제기초 여건의 유지는 물론 효율적인 외자 조달과 운용, 국부 자산의 효율적 운영, 자본 유출입에 따른 과도한 변동성 보완, 금융기관의 외환 건전성 강화 등 종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위기대응 역량이 커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실정에 맞는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에도 힘써야 할 때다. 아울러 자국 통화의 국제적 통용성을 갖춘 금융 선진국의 경우 작은 규모의 외환보유액으로도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물론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호주, 캐나다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한국의 20~25%에 불과하다. 한국이 신흥국을 넘어 금융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승호 < 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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