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탐욕이 사회번영 이끌어"…정부역할 최소화 주장

입력 2013-08-30 17:40
수정 2013-08-31 08:37
민경국 교수와 함께하는 경제사상사 여행 (51)·끝 - 시장 진화사상 개척자 버나드 맨더빌

개인의 악덕은 사회의 이익…간섭주의 사상에 선전포고
시장·화폐·법·도덕 등 사회구조 자생적으로 형성…복지정책에 반대 주장 펼쳐



18세기 초 이후 절대왕정 통치가 완화되고 경제자유가 확대되면서 영국 사회는 금융서비스 유통업 등 상업이 급속히 확산됐다. 귀족까지도 창업과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등 생산과 소비 활동 모두가 왕성해지면서 생활 모습이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상업의 발전으로 물질 추구, 이기심, 탐욕, 향락 등이 만연하고 도덕이 파괴돼 사회 결속과 통합이 위태로워졌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인간을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해방시키려면 도덕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질서를 만드는 도덕개혁 운동이 보편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이기적 인간들이 물질 추구에 몰입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물질 추구 행동들이 오히려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질서를 자생적으로 만들게 된다고 주장하며 당시 도덕개혁 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인물이 있었다. 바로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이주한 정신과 의사 버나드 맨더빌이었다.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고 정신병 연구로 두뇌 심리 인성 등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맨더빌의 핵심 사상은 이렇다. 세상은 이기심 물질주의 탐욕 등 악덕이 득실거린다. 그래도 세상은 멀쩡하게 잘 돌아간다. 신기하게도 ‘악덕’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게 그의 핵심 주제다.

맨더빌의 사상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면서 철학자 귀족 등을 당황하고 불쾌하게 만들었다. 인류의 문명과 번영을 이끄는 게 이성 이타심 등과 같은 거창한 덕성이라는 믿음을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이라는 간단한 공식으로 조롱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편하게 우화의 형식을 빌려 때로는 시로, 때로는 대화하는 방식으로 쓴 맨더빌의 저서《꿀벌의 우화》는 ‘점잖은 양반’들이 공개적으로 읽기에도 추잡한 것처럼 보였다. 악덕이 사회를 번창하게 만든다는 모순 때문이다. 법원도 이 책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서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비밀리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를 비판할수록 책을 읽고 그의 사상에 영향받는 젊은 독자 수가 더욱더 증가했다는 게 역사가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맨더빌이 주목한 건 그 모순이라기보다는 인간들 각자가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회구조가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진기한 현상이었다.

그 구조는 언어처럼 정부가 계획해서 만든 인위적인 것도 아니고, 인간의 본능에서 직접 생겨난 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성장된 제3의 것, 즉 ‘자생적 질서’라는 게 맨더빌의 설명이다.

자생적으로 형성된 사회구조의 대표적인 예가 시장 화폐 상관습 법 도덕 등인데 맨더빌이 주목한 건 시장이다. 이는 정부가 계획해서 만든 게 아니라 인간들이 돈벌이와 탐욕을 위해 새로운 것을 시행하고 잘못된 것을 걸러내는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자생적으로 형성된 진화의 선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번영의 원동력인 복잡한 분업 관계도 사회 전체를 계획하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사익 추구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된다는 게 그의 분업이론이다. 맨더빌은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났고 이 불평등이야말로 분업과 성장, 문명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회의 번영과 문명은 이기심 허영 등 악덕의 소산이고 그래서 상업사회에서 악덕을 없애려는 도덕운동은 당치도 않을뿐더러 빈곤과 야만을 불러올 뿐이라고 맨더빌은 경고했다. 사회 번영은 한 개인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재주를 통해, 한 세대가 아니라 수세대에 걸쳐 축적된 지혜를 통해 창출되기 때문에 시장 질서가 탁월하다는 그의 설명도 매력적이다.

주목할 것은 악덕이 무조건 사회의 이익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맨더빌의 인식이다. 그 조건은 시장경제의 기초가 되는 상관습, 상도덕, 법과 같은 제도들인데 이것들도 입법자가 계획해 만든 게 아니라 이기심과 탐욕을 위한 시행착오의 긴 진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 제도들이 사회의 번영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 수많은 세대가 개발하고 연마한 삶의 방식과 돈벌이 지혜를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그런 값진 지혜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맨더빌의 국가관이다. 잘살고 못사는 것을 공무원과 정치인의 미덕과 양심에 의지하려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정치인 등이 만든 법질서도 불안정하다고 그는 경고한다. 정부는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라는 그의 현실적 인식에서 나온 경고다. 정부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뜻이다.

맨더빌이 복지정책을 반대한 이유도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고 정부에 대한 의존심을 높인다는 점 때문이다. 특정 목적을 달성하거나 시장의 결과를 수정하기 위한 입법은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권력이 제한된 작은 정부가 원칙이라는 게 맨더빌의 주장이다. 제일의 국가과제는 강제 사기 기만 등을 막아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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