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빅 브러더' 감사원] 결론 내고 표적감사…피감기관 "찍히면 죽는다" 감사거리 상납도

입력 2013-08-30 17:18
수정 2013-08-31 01:39
(2) 정부 위에 군림하는 슈퍼갑(甲)

실적 채우려 "자백부터 하라" 검찰수사 뺨쳐
'경영 우수' 공기업, 꼬투리 잡아 '실패' 낙인
전문성은 뒷전 … 기업 구조조정 등에 악영향




“정부 경영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근데 이듬해 감사원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배임으로 검찰에 고발하더라. 경영 판단에 대한 사항을 따지는데 누가 버틸 수 있겠느냐.”(전 에너지공기업 임원 A씨)

“미리 결론을 내놓고 감사를 시작한다. 승진을 앞둔 감사관이 내려오면 더욱 심하다. 적발 실적을 내지 못해 감사기간을 연장하는 경우도 있다. 피감기관은 초죽음이다.”(금융공기업 S사 관계자)

감사원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면서 정부 위에 군림한다는 원성이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내부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이름만 바꾼 ‘테마감사’로 1년 내내 감사를 벌이는가 하면 전문성이 떨어지는 감사관의 고압적 태도로 피감기관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탕식 정책감사에 휘둘린다

광물자원공사의 해외투자사업은 2011년 기획재정부로부터 공공기관 우수 경영사례로 꼽혔다. 적극적인 해외 진출로 리튬과 구리 등 전략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이유에서다. 그해 7월에는 113개 공공기관 경영평가 담당자 앞에서 발표회도 가졌다. 하지만 불과 9개월 뒤 감사원은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테마감사’에서 경제성 분석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당시 김신종 사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정부가 인정한 우수경영 사례가 대표적 투자 실패로 둔갑한 것이다. 김 사장은 8개월 뒤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광물 확보는 당시 정부의 정책과제였고, 감사관에도 충분히 해명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며 “감사 결과가 나온 뒤 이의를 제기했지만 조사 중이라는 답변만 받았다”고 말했다.

비슷한 지적을 받은 당시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은 감사원 감사에 반발, 아예 사표를 냈다. 또 다른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는 “감사관이 표적으로 삼은 정책감사는 검찰 수사보다 더 강압적”이라며 “피감기관들의 해명은 최종 보고서에 한 줄도 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양 건 전 원장 취임 이후 감사원의 실적주의가 부쩍 심해진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때문에 대형 공기업은 승진을 앞둔 감사관들의 몫이라는 흉흉한 얘기도 공공기관 사이에서는 정설로 통하고 있다.

○전문성은 뒷전…끊이지 않는 잡음

중복감사 못지않게 감사 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감사원이 금융공기업을 감사하면서 투자 실패와 헐값매각 사례만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감사원이 지난 3월 산업은행 감사에서 5년간 2000억원의 수익을 낸 사모펀드(PEF)에 대해 한 종목 투자에서 63억원의 손실을 봤다는 이유로 주의요구 처분을 내린 것이 단적인 예다. 산은은 2006년 9월부터 5년간 ‘KDB밸류 2호’ 이름의 PEF를 운영하면서 연간 투자수익률 18.5%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냈다. 펀드설정액 3300억원은 청산 당시 5300억원으로 불어났지만 감사원은 ‘가온미디어’ 한 종목에서 손실을 봤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은 것이다.

국민연금이나 우정사업본부 등 공적 기금도 감사원 감사의 전문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펀드매니저들이 부패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은 좋지만 기금 운용 수익률에까지 간섭하는 ‘월권’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

국민연금 측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관련, 감사원은 수익률 기준을 두 자릿수로 못 박고 이에 못 미치면 기관 경고 등 제재조치를 취한다”며 “시장평균 투자수익률 연 8~9%대를 감안하면 턱없이 높다”고 말했다. 연기금의 한 투자역은 “감사원의 막무가내식 감사 때문에 연기금 투자역들은 수익률을 더 낼 수 있는 투자안보다 손실을 내지 않는 안정적인 방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보신주의 부추기기도

감사원은 정부부처의 기업 구조조정 향방에도 영향을 준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5월 청와대 회의에서 부실화된 STX팬오션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억지로 인수하도록 할 거라면 면책보장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의 뿌리에는 산은의 ‘감사원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 2010년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뤄진 금호생명(현 KDB생명) 인수를 놓고 감사원이 1년 뒤 투자손실을 이유로 관련자 징계를 요구한 것. 당시 금호생명 인수는 정부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지만 감사원은 “부실한 인수업무 처리로 최대 2589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염려가 있다”며 관련자 징계를 요구했다. 산은은 인수 절차가 적법했고, 투자가치를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감사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산은의 면책보장 요구도 말이 안 되지만 감사원의 무리한 감사가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전반에 걸쳐 보신주의를 부추기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급 간부도 “정책을 입안할 때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책은 피하고 보자는 식의 정서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심기/이상은/조미현/좌동욱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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