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의 교양] (17) 명예로운 삶이란?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입력 2013-08-30 14:49

명예로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혹은 한 사회의 엘리트란 어떤 사람인가요? 좋은 학벌에, 많은 재산을 갖고, 도덕적인 흠결이 적은 삶은 살았다면 그를 엘리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오늘 우리가 읽을 책이 제시하는 모습은 그와 다릅니다. 학벌과도, 재산과도 관계 없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책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린 명예로운 삶이 무엇인지, 한 사회의 엘리트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리아스>는 길고 복잡한 책이니 먼저 전체 구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책입니다. 하지만 그 전쟁 전부를 세세하게 전해주지 않습니다. 전쟁의 절정에 해당하는 50일간의 내용만 담고 있습니다. 무려 10여년간 있었던 일을 단 50일 안에 담아서 이야기하다니! 내용 전달이나 제대일까 걱정스럽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호메로스는 50일 안에 트로이전쟁 전부를 넣어 둘 만큼 솜씨가 좋은 장인이었습니다. <일리아스>의 놀라움은 단 50일 안에 10여년간의 일을, 아니 우리 인생 전부를 담았다는 데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메로스의 서술 전략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호메로스는 트로이전쟁을 전부 다 취급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했고 그 밖의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핵심만 말하려다 보니 구조가 논리적으로 매우 엄격합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일리아스>는 총 24권으로 되어 있으며 1권과 24권, 2권과 23권, 3권과 22권이 서로 대응하는 식의 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권에는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나옵니다. 24권에선 그의 분노가 해소됩니다. 1권에선 인간이 신에게 부탁하는 장면이 나오고 24권에선 신이 인간에게 부탁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2권에선 함선의 목록이 나열되고 23권에선 영웅의 명단이 제시됩니다. 3권에선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파리스 왕자와 메넬라오스의 결투가 나오고 22권에선 전쟁을 마무리할 영웅들인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투 장면이 나옵니다. <일리아스>는 매우 방대한 책입니다. 때문이 이렇게 구조를 알아둬야 길을 잃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대는 자신을 감히 신들과 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불사신과 대지 위를 걷는 인간들은 결코 같은 종족이 아니니라.”

<일리아스>의 밑바탕에는 ‘인간은 신과 다르다’는 자각이 깔려 있습니다. 인간은 신과 달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지요. 그래서 어느 시인은 이렇게 삶을 노래했는지 모릅니다.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데!’ 그런데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허무하기만 한 걸까요? 아니면 우리의 삶도 고귀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영웅 아킬레우스의 삶을 통해 제시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서평가 클리프턴 패디먼은 <일리아스>를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이야기의 주된 라인은 그의 분노, 그의 시무룩함, 그의 야만 행위를 추적하다가 마지막에 그의 고상한 성품을 확인한다.”

이야기는 전리품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아킬레우스가 분노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왕에게 전리품을 빼앗긴 나머지 삐친 아킬레우스는 모든 전투에 불참하겠노라 선언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시무룩해집니다. 왜냐하면 이대로 고향에 돌아갈 것인지 전쟁에 계속 참여할 것인지 고민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예언에 따르면 전쟁에 계속 참여할 경우 그는 죽습니다. 만약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죽음을 다소 늦출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쟁터에서의 죽음은 아킬레우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을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아킬레우스가 전쟁터에서 죽는다면 그는 불멸의 명예를 얻습니다. 그 죽음은 공동체를 구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죽을 결심을 하고 전투에 참여하려는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그의 어머니가 하는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암 그래야지, 내 아들아! 지칠 대로 지친 전우들을 갑작스러운 파멸에서 구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니까.”

즉, 공동체를 위기에서 구하는 이가 영웅이며, 그런 영웅만 필멸하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불멸의 이름을 얻는다는 것이 호메로스의 생각입니다. 이처럼 호메로스가 말하는 명예는 세속적인 부나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일리아스>가 말하는 명예로운 삶이란 자신을 희생하여 공동체를 위험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명예로운 행동만 인간을 고귀하게 만들어 줍니다. 명예로운 행동이란 많은 돈을 축적하는 것도, 수백억원짜리 건물을 짓는 것도,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저 부자일 뿐이며, 좋은 학벌은 가진 사람은 단지 높은 학업 능력을 가진 사람일 뿐입니다. 돈이 많고 학벌이 좋고 직업이 좋다는 것이, 어떤 사람을 엘리트로 만들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현실 속에서는 이를 착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말입니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제한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엘리트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안타깝게도 완벽한 이상사회가 아닙니다. 근대 기술문명은 이전 시대에는 꿈꿀 수 없던 쾌적함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심각한 지구 환경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인류는 유사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의 물질적 부를 축적했지만 너무나 가난해서 먹거리조차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이들은 여전히 지구 도처에 있습니다. 아이들의 인권을 유린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과도한 학업 부담에 대한 문제 제기는 늘 있지만 해결책은 전혀 나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 이외에도 수많은 문제가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인간이 생물학적 진화로 그치지 않고 문명의 진보를 이룬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다른 어떤 생명체에도 없는 지적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능력을 활용해서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해왔고, 그 문제 해결의 역사가 수천년 축적되어 오늘의 진보를 낳은 것이죠. 인간이 계속 진보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를 해결하려 하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남다르게 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그 사회의 엘리트이며, 명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김영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ysjade@gmail.com


박진영, 美서 '적자'나더니 99억을…충격

김정은 옛 애인, '성관계' 촬영했다가 그만

'女고생 성폭행' 차승원 아들, 법정 나오자마자

女배우, 알몸으로 '성인영화' 촬영하다…경악

장영란, 한의사 남편과 결혼 4년 만에…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