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街)는 지금 '중소기업 전성시대'다. 유통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중소기업 지원 상생펀드를 조성하고 있고 중소기업 상품 알리기에 앞장서는가 하면 해외진출과 더불어 잇단 특별기획전까지 열어주고 있다.
이런 '믿기지 않는' 유통 대기업들의 파격적인 지원 결정에 중소기업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다만 이렇게 맞이한 전성시대는 지난 6월 동반성장위원회의 동반성장지수(대기업의 협력업체에 대한 협약·지원 평가) 발표 이후 갑자기 열렸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CJ오쇼핑을 비롯한 홈쇼핑업체 6곳은 최근 '상생펀드 협약식'을 갖고 2100억원을 웃도는 중소기업 지원 상생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이 펀드는 중소기업에 저금리로 자금을 지원해 준다.
CJ오쇼핑, GS홈쇼핑,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 등 이른바 '빅4'로 불리는 곳이 400억원씩, 홈앤쇼핑과 NS홈쇼핑이 각각 300억원과 200억원을 선뜻 내놨다. 앞으로 이들은 중소기업 지원책을 바탕으로 고(高)품질의 저가 상품을 안정적으로 확보, '원가절감'을 무기로 해외사업의 성과를 올리겠다는 복안이다.
대형마트 '빅3' 중 하나인 롯데마트는 중소기업청과 머리를 맞대고 우수한 중소기업의 인도네시아 수출 판로 지원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롯데마트는 지난 8일 민관 관계자들로 구성된 '우수 중소기업 인니(印尼) 진출 선정위원회'를 꾸려 여성용 한방생리대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웰크론 등 우수 중소기업 26곳을 뽑았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법과 규제도 다르고 시장과 고객도 낯설어 원하면서도 해외 진출에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던 불안함에 대해 매우 공감하고 있었다"면서 "다소 어려움은 있지만 국내 우수 중소기업들이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들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마트는 아울러 중소 두부제조업체 3곳(한그루식품 동화식품 오성식품)에 연합 브랜드(어깨동무) 사업을 제안하고 패키지 디자인 컨셉 수립·제작은 물론 향후 운영 계획 수립을 도와주는 등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개성공단 입주 중소기업들의 재정난을 덜어주기 위해 '개성공단 우수상품 특별 기획전'도 열린다. 이 기획전은 8월 29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롯데마트 수도권 5개 매장에서 진행된다.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 역시 중소기업 해외 수출을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이마트는 지난달 '중소기업 상품 해외수출 동반성장 모델'을 선보이고 중소업체 17곳의 우수한 제품들을 홍콩시장 진열대에 올렸다.
이마트는 직접 고른 중소기업의 제품을 매입하고 자체브랜드를 달아 대신 수출해 주고 있다. 이마트는 또 해외 진출 전담부서가 없는 중소기업들의 실정을 고려해 자체 수출관리시스템을 통해 통관과 선적 대금결제 클레임 등 수출관련 업무까지 대신해주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중소 협력업체와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한 곳이다. 이 백화점은 지난달 동반성장펀드를 600억원으로 대폭 늘리고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 협력업체 대금지급일도 3분의 1로 줄이고 기업별로 1년에 최대 3억원까지 저리로 빌려준다.
신세계백화점은 이에 앞서 협력회사와 동반성장 의지를 다지기 위해 수 개월째 '편지 소통'에 나서고 있다. 어린이날이 포함된 5월엔 중소업체들의 다양한 캐릭터 상품의 판로를 지원해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유통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지원책은 공교롭게도 뿌리 깊게 자리 잡아온 '갑을(甲乙)'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 동반성장지수 평가 발표(6월) 이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당시 낮은 점수를 35곳 중 9곳이 유통 대기업이었다.
현대홈쇼핑 현대백화점 홈플러스 CJ오쇼핑 등은 낙제점인 '개선' 판정을 받았고 사실상 미흡하다는 의미인 '보통' 등급은 롯데홈쇼핑 롯데케미칼 롯데백화점 롯데제과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으로 채워졌다.
동반성장지수 평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73곳과 맺은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의 이행실적 평가와 동반위의 중소기업 체감도 평가결과 점수를 합산해 4등급(우수, 양호, 보통, 개선)으로 나눠 등급만 매년 발표한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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