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22개 주요기업 사회공헌 금액 3조 넘어
전공 분야 살린 나눔활동 활발
이미지 제고란 1차적 목적 넘어 사회 안정과 성장에 기여
#1.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7월 저소득층 자녀 등 미래 우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겠다고 발표했다. 본인이 보유한 광고계열사 지분(36만주) 전량을 그룹 사회공헌재단에 내놓기로 한 것. 이는 2007년 이후 다섯 번째 발표된 사재 출연으로, 지금까지 정 회장이 출연한 사재만 8500억원에 이른다.
#2. 삼성그룹은 올해부터 사내 사회공헌활동 조직을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두기로 했다. 그룹 차원의 사회봉사단을 두고 있지만, 여기에 더해 CEO가 직접 사회공헌 업무를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작년 4400여 사내 봉사팀을 통해 총 210만시간의 봉사활동을 벌였다. 연간 사회공헌 활동에 투입하는 예산도 4000여억원에 달한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뜻한다. 기업이 경영 이외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공헌과 환경보호 등에 나서야 한다는 게 CSR의 주된 개념이다. 한 때 CSR은 기업 경영 활동과는 무관한 것이란 인식도 있었다. 기업의 1차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윤추구이지, 나눔이나 사회공헌을 앞세울 수 없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CSR은 기업 경영의 주요 요소로 자리잡았다. 매년 주요 기업마다 대대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사회와의 공존을 꾀하고 있다. 양뿐만 아니라 질 측면에서도 기업들의 사회공헌은 급성장했다.
◆3조원 넘어선 기업 사회공헌
국내 주요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투입하는 금액은 매년 급증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년 말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혹은 600대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분석해 발간하는 백서에 따르면, 2011년 주요 기업 222개사의 사회공헌 투입액은 3조1241억원에 달했다. 2010년 2조8735억원보다 8.7% 늘어난 것이며 10년 전인 2002년 사회공헌 투입액(1조865억원)의 세 배가량에 달하는 규모다.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액은 일본 기업과 비교해도 높다. 2011년 기준 국내 기업(222개사)의 사회공헌 지출액은 세전이익 대비 3.20%인 데 비해 일본 기업(364개사)은 2.73%에 그쳤다. 전경련 관계자는 “2011년 정부 사회복지 예산(15조3887억원)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쓰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각 기업 임직원들의 사회공헌 참여도 크게 높아졌다. 2004년 국내 기업 한 곳당 572회였던 봉사활동 참여횟수는 2011년 2003회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임직원 1인당 평균 봉사활동 시간도 2004년 3시간에서 2011년 17시간으로 여섯 배가량 늘었다.
◆전공 분야를 살리는 사회공헌
최근 국내 기업 사회공헌의 새 트렌드는 ‘전공 분야를 살린 나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단순히 저소득층과 소외 이웃들에게 물품을 기증하거나 이웃돕기 성금을 내던 것과 달리 지금은 각자 주력사업과 관련된 특기를 살려 도움을 주는 기업이 늘고 있다.
LG그룹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매년 성장장애를 앓는 아동들을 위해 유트로핀이란 성장호르몬제를 지원해준다. 의약품을 생산하는 계열사 LG생명과학의 장기를 살린 나눔활동이다.
현대차도 자동차 제조업이란 특성을 살려 2010년부터 ‘기프트카’라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용 중이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장사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트럭을 사지 못하는 소외계층에 포터 등의 차량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삼성그룹은 저소득층 가정 중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공부방’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공계 박사급 직원들이 나서 수학이나 과학 등의 학습을 도와준다. GS칼텍스도 에너지 관련 사업을 하는 특성을 살려 캄보디아 등 개발도상국에 가정용 태양광 에너지 발전기를 지원하고 있다.
◆사회공헌이 곧 기업경쟁력
기업들이 이처럼 사회공헌에 공을 들이는 배경은 기업 경쟁력과 사회공헌이 무관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사회공헌을 통한 기업 이미지 제고라는 1차적 목적도 있지만, 좀 더 넓게 보자면 기업이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의 안정과 성장이 결국 기업의 이익으로 되돌아온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해외 기업들 가운데 사회공헌을 비즈니스와 연계해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글로벌 석유기업 엑슨모빌의 경우 아프리카 지역 풍토병인 말라리아 퇴치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프리카 정상회담에서는 국제기구와 글로벌 시민사회단체 등과 공동으로 말라리아 사망률을 낮추자는 ‘말라리아 이니셔티브’란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엑슨모빌이 말라리아 퇴치에 공을 들이는 건 아프리카 지역에서 말라리아로 인해 자사 임직원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포함해 해당 지역의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등 직간접적인 손실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코카콜라도 2005년부터 인도에서 ‘물 리스크’에 대응하는 나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인도에서 식수 오염과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게 장기적으로 자사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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