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지난 13일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교육부는 고교 서열화 논란을 막고 일반고를 육성하기 위해 일반고에 교과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주면서 2015학년도부터 평준화지역 자율형 사립고에 대해 ‘내신 제한 없는 추첨선발’을 도입키로 했다. 서울 등 평준화지역은 그동안 중학교 내신 상위 30~50% 이내 지원자 가운데 추첨 선발 방식으로 신입생을 뽑아 왔다. 앞으로는 성적 제한 없이 누구라도 지원할 수 있으며 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이 방안에 대한 반대론자들은 ‘일반고를 살리겠다며 자사고 등을 죽이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일반고에 교과과정의 자율성을 주면서 자율형 공립고를 순차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한데 이어 자사고의 자율성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논리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자사고 도입 이후 불거진 학교 서열화와 일반고 황폐화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반기고 있다. 추첨 선발을 하더라도 자사고가 얼마든지 건학이념에 맞게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주 맞짱토론은 ‘평준화지역 자율형 사립고 추첨 선발 해야 하나’를 놓고 성병창 부산교대 교육학과 교수와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가 논리를 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
찬성 고교 서열화·일반고 황폐화…부작용 막을 최소한의 조치
교육부가 최근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전체 고교생의 71.5%가 다니고 있는 일반고를 자율형 공립고 수준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일반고는 특수목적고나 자율고(자율형 사립고 및 자율형 공립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 방안은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에서 비롯된 여러 부작용을 해결하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있고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 방안이 논란을 빚고 있는 중심은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 제도 개선이다. 자사고는 고교 평준화 정책이 갖는 단점을 보완하고 기존 자립형 사립고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사학의 자율성 제고, 학생 및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보장, 다양한 학습 욕구 충족, 교육 경쟁력 강화를 지향했다. 제도 도입 당시 입시 명문고 부활, 사회 양극화 교육 부문으로 확대, 교육 기회 불평등 심화, 공교육 근간 위협 등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번 방안을 보면 교육부는 자사고가 설립 취지와 달리 대부분 입시 위주 교육을 하고 있으며, 학교 간 서열화를 더욱 촉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인식한 것 같다. 결국 자사고 제도를 유지하면 일반고의 정상화와 ‘꿈·끼’를 살리는 중학교 교육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평준화 지역 내 자사고는 성적 제한 없이 학생을 ‘선(先)지원, 후(後)추첨’ 방식으로 선발토록 한 것이다.
현행 고교 다양화 정책의 핵심인 자율고가 전적으로 일반고의 교육 역량을 약화시킨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행 고교 체제가 일반고의 교육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는 근거로 세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내신제한 그대로 유지땐 중학교과과정 왜곡 심화
먼저 선발 시기에 따라 일반고의 역량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고교 입시 전기에 특목고(과학고, 외국어고, 예술고, 체육고, 마이스터고), 자사고, 특성화고가 학생을 먼저 선발한다. 전기와 후기 사이에는 전국 단위 자율학교가 선발한다. 후기에는 자율형 공립고와 중점학교가 먼저 선발하고 마지막으로 일반고가 추첨으로 학생을 배정받고 있다. 일반고가 아닌 학교가 우수 학생을 선점할 수 있는 제도여서 일반고 진학 학생 중 우수 학생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둘째 선발 방식의 차이다. 일반고보다 먼저 뽑는 특목고나 자사고는 중학교 내신 성적을 반영해 선발하고, 일반고는 나머지 학생들을 추첨으로 강제 배정받고 있다. 이런 차이는 고교 서열화를 자연스럽게 유발하고, 일반고를 수준 낮은 학생들이 다니는 곳처럼 인식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셋째 중학교 교육과정의 비정상적 운영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자사고 및 특목고의 중학교 내신 성적 반영으로 인해 중학교에서는 내신 변별력을 유지하고자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문제를 출제하고 있다. 이는 90% 이상의 학생이 중학교 교육과정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들고, 학교 교육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들 학생이 대부분 일반고로 진학하고, 이들의 불만은 일반고에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고교 다양화 정책에 따라 특목고 및 자사고가 늘어나면서 교육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해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은 문제다. 2009년 4월 기준 서울시내 고교생의 가정 배경 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어고>자사고>일반계고>실업계고 순으로 계층별 서열화돼 있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자사고가 본래 설립 취지에 맞게 특성화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학교 운영상의 자율권을 확대하고, 특성화 교육을 원하는 학생은 누구든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이번 방안에 담았다.
이에 대해 ‘수월성 교육을 포기하고 평준화 체제로 돌아갔다’고 비판하는 측이 있다. 이는 고교 평준화 정책을 마치 모든 학생에게 획일적으로 동일하게 교육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교육적 다양성이나 수월성 교육이 침해받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릇된 인식이다. 고교 평준화 정책은 본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 때 적용하는 무시험 입시 제도의 특성을 일컫는 용어다. 평준화 정책을 통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수월성 교육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학교 내에서 질적으로 우수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그 방식으로 학습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활동을 벌이는 것이 더욱 중시돼야 할 것이다.
평준화 학력저하는 '기우'…미국선 교육성과 더 나와
고교 평준화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요 논리는 평준화 정책이 학력의 하향화를 낳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력 하향화의 증거를 찾기 어렵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 평준화 지역의 성취도 수준은 전반적으로 비평준화 지역의 성취도 수준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었고, 평준화 지역에서 오히려 학력이 상승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학생 선발권을 통해 수월성 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잘못됐지만, 그들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이번 교육부의 방안에 대해 그런 주장을 펴는 것은 옳지 않다. 교육부 방안에 따라 선발권이 사라지는 학교는 평준화 지역 자사고 39곳뿐이며, 비평준화 지역 자사고 5곳과 전국 단위 자사고(옛 자립형 사립고) 등 11곳은 학생 선발권을 유지하고 있다. 자사고뿐만 아니라 영재학교, 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 등도 계속 선발권을 가진다.
고교 간 차별적 선발은 시대적으로 뒤처지는 제도다. 차별적 선발이 갖는 기본 입장은 이질 집단 편성보다 동질 집단 편성에서 교육적 성과를 더 효과적으로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에서 동질 집단 편성보다 이질 집단 편성에서 교육적 효과가 더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학업 성취 수준이 이전보다 크게 높아진 최우수 학교들을 블루리본학교(National Blue Ribbon Schools)로 뽑아 교육부 장관이 발표하고 있다. 이 학교들은 이질적 집단 편성으로 개별화한 교수-학습 중시, 교과목 간 협력 학습, 학교 구성원 간 상호 존중 풍토 조성 등의 특징을 갖는다.
어떤 제도도 완벽하지는 않다. 교육부 방안은 고등학교 대다수 학생이 다니고 있는 일반고의 교육 역량 강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 점은 교육적으로 가치 있고 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수평적 다양화’의 기본 방향을 실현하려면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고교 서열화를 타파할 수 있는 후속 대책이 계속 마련돼야 한다.
반대 학생들의 학교선택권 박탈…官 주도 후진국 행정 전형
교육부의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에 따르면 2015학년부터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평준화 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신입생 선발전형에서 중학교 성적 상위 50%라는 제한이 사라진다. 다시 말해 자사고의 신입생 선발은 지원과 제비뽑기식의 추첨에 의해서만 이뤄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부의 이번 조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선택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사고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가장 중요한 설립 취지는 단위학교의 자율권 보장이다. 그런데 자율권보다 더 궁극적인 목적은 교육 수요자들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는 데 있다. 학교의 자율권은 교육 수요자들의 다양한 선택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권은 헌법에 의해 보장된 교육권의 중요한 부분이다.
대한민국 헌법 31조에 의하면 국민들은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교육기본법 3조와 12조는 각각 적성과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와 학습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있다. 또 교육기본법 13조는 자녀의 교육에 관한 학부모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교육권은 학생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필요로 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학습을 할 수 있는 권리,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 선택권, 교육내용 선택권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가뜩이나 공교육 불만 큰데 '능력별 교육' 헌법에도 위배
우리나라는 교육에 엄청난 예산과 재원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과 비교해 공교육 만족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연간 국내총생산의 3%에 육박하는 20조원 정도가 사교육시장에 투입되고 수조원이 해외 유학·연수 비용으로 지출되는 현상들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공교육에 대한 불만의 가장 큰 원인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필자가 연구한 결과 20여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 선택권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최하위를 차지했다.
2010년 서울 지역을 필두로 도입된 자사고 제도는 제한받는 학교 선택권을 다소나마 확대하기 위한 교육 정책이다. 즉 소정의 심사를 통해 선별된 사립학교에 학생 선발, 교육과정 운영, 재정 등 크게 세 가지 분야에서 자율권을 줘 다른 일반고와의 차별화를 유도함으로써 교육 수요자들에게 학교 선택의 폭을 넓혀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자사고는 출발 전부터 학생 선발과정이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논란에 휩싸이며 자율권을 점차 상실해왔다. 교육부의 방침에 따르자면, 자사고는 재정면에서 학생의 부담이 일반고의 세 배를 넘지 못하게 돼 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자사고 선발 대상을 중학교 내신 상위 50%로 제한하는 미미한 운신의 폭을 허용했다. 이렇게 되니 상당수의 자사고에서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졌고 심지어 ‘차라리 이럴 바에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나마 미미하던 운신의 폭마저 없어지면서 학생 선발과정도 일반고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보니 ‘자율형’이라는 명칭이 무색해지고 학교 선택도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어떤 학부모가 일반고 등록금의 세 배를 내면서 일반고와 아무런 차이도 없는 자사고를 보내려 하겠는가.
필자는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이 반드시 성적우수자들에게 국한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발의 기준은 개별 학교의 교육목적이나 이념에 따라 상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교육부가 선발권 자체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은 일종의 전횡이다.
교육부의 자사고 학생 선발권 박탈은 관(官)주도 교육행정의 전형이다. 사립학교들은 이름만 사립일 뿐 교육과정의 선정, 운영, 학생 선발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중앙·지방 정부의 통제와 감독을 받는다. 관주도적인 규제와 간섭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교육계 관료들은 ‘학교를 믿을 수 없다’고 응답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는 관료들만이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뜻인가. 이야말로 전형적으로 후진국형 관의 오만과 편견이다.
공교육이 철저히 관에 의해 주도되는 중국에서는 학생 선발, 재정, 교육과정 운영 등에서 완전한 자율을 누리는 사립학교의 비중이 과도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영국, 미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통제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립학교들이 전체 공교육의 19% 정도(OECD 평균)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도 사립고 자율성 확대…학생선발권 학교에 돌려줘야
이제는 우리의 교육도 정부 주도와 감독 위주의 후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사고와 같은 사립학교들을 활성화함으로써 관 중심의 획일성과 경직성에서 탈피해 창의성과 다양성을 지향해야 한다. 사립학교라고 해서 무조건 등록금이 비싼 ‘부자들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는 것은 선진국의 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종교단체나 자선단체 혹은 독지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사립학교들은 ‘귀족학교’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립학교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의 공교육 체제를 더욱 유연하고 탄력 있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간 경쟁과 협력을 통해 국가 교육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다.
자사고는 단순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곳은 아니다. 개성 있는 건학이념이나 교육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자사고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특기나 적성, 장래의 진로 혹은 지역적 특수성과 학부모들의 특색 있는 수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자사고의 출현도 바람직하다. 자사고를 목적이나 기능 면에서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사고의 핵심은 자율을 바탕으로 학교 교육의 다양성을 증진시킴으로써 교육 수요자들의 선택권을 확대해 주고 관주도의 경직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단위학교의 학생 선발에 대한 재량은 중요하고 상징적인 자율권이기 때문에, 이를 박탈하는 것은 자율의 부정인 셈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나라의 장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일관된 교육정책을 펴가는 리더십이다. 영국의 수상을 역임한 토니 블레어는 교원노조와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평가제도를 정착시켜 빈사 직전의 영국 공교육을 회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기는 잃으면 그만이지만, 권력은 잃더라도 책임이 남는다는 무서운 교훈을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싶다.
■ 읽을 만한 자료
△경기도 고교평준화 효과 분석 연구(성기선, 경기교육청, 2009)
△학교가 희망이다(좋은 학교 프로젝트, 천재교육, 2012)
△Handbook of Research on School Choice(Mark Berends, Matthew Springer, Dale Ballou & Herbert Walberg, Routledge, 2008)
△The Future of School Choice(Paul Peterson, Hoover Institution Press, Stanford University, 2003)
△School Choice and Social Justice(Harry Brighous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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