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서민들의 지나친 전세값 고통 덜어줘야"
반 "오히려 급등 역효과…세입자들만 피해"
전셋값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거래가 거의 끊기다시피 하는 거래절벽을 보이고 있다. 향후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줄어든 데다 정부의 취득세 항구 인하 조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거래를 미루고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이사철도 아닌 한 여름인데도 전세 가격은 더욱 올라가는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전셋값 고공행진에 월세 상승세는 주춤해졌지만 향후 전세보다는 월세가 주된 주택 임대 방식이 될 것이 유력해지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다시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한 번에 올릴 수 있는 전세나 월세의 인상 폭을 일정 수준에서 제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다시 불거진 전·월세 상한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찬성 측은 지금처럼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 서민들은 전셋값 마련에 허리가 휠 수밖에 없다며 어떻게든 인상 폭에 규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전셋값 급등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전국 주택 기준 전셋값은 2008년 말보다 30.98% 뛰었다. 같은 기간 매매가 상승률(10.21%)의 3배에 이른다. 이 같은 전셋값 급등은 결국 고스란히 서민들 부담이 되기 때문에 그냥 방치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민주당은 전·월세 세입자가 희망하면 1회에 한해 계약을 더 연장할 수 있는 계약갱신 요구권을 도입하고 계약 갱신 때 인상률을 연 5% 이내로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조경태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시도한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고 단언해도 무리가 아니다”며 “전·월세 상한제를 빠른 시일 내에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 사례를 들어 찬성하는 견해도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도 임대료 통제와 갱신청구권에 관한 입법 사례가 있는데 서유럽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임대료의 지나친 인상을 막거나 임대표를 공정 수준 이하로 통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제도와 함께 시행한다는 조건하에 부분적으로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부장은 “전·월세 상한제가 장기적으로 필요한 것은 맞지만 정부 통제가 어느 정도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이 제도가 정착되려면 주택바우처 등의 제도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
정부는 일단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전·월세 상한제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전·월세 가격 제한은 임차인을 보호하는 측면은 있지만 공급이 줄어 오히려 임차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혀 사실상 반대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전·월세 상한제가 결과적으로 전세 매력을 더욱 높여 오히려 전세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우려도 비슷한 맥락의 주장이다.
새누리당 역시 부정적이다.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은 전·월세 상한제를 실시할 경우 전셋값 급등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그는 “1990년대 말 전세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을 때 전셋값이 폭등했다”며 “많은 임차인이 전셋값이 싼 지역을 찾아 교외로 나가는 등 부작용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이 도입되기 전에 전·월세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신규 임차인을 찾아 전셋값을 올리는 등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전면적 상한제 대신 급등지역 등에 제한적 상한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의 장성수 선임연구원은 “상한제 방식의 가격 규제는 또 다른 시장 왜곡을 가져올 뿐 근본적으로 전세가격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셋값 상한제가 도입되면 집주인은 일정기간 임대료를 시장 가치만큼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책 시행 전에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려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려고 할 것이라는 것이다. 김부성 부동산부테크연구소 소장도 “이면계약 성행 등으로 전세 시장 왜곡 가능성이 큰 데다 매매시장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생각하기
경제정책 중에는 언뜻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어떤 문제가 있어 특정 경제 행위를 규제할 때 특히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특정 경제 행위가 발생하는 이유는 대부분 한 경제시스템 내에서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며 법과 제도로 억누르면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풍선 효과처럼 다른 분야에서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거나 규제 설정 당시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전·월세 상한제도 마찬가지다. 얼핏 지나친 전셋값 급등을 법으로 막으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세나 월세가 급등하는 것은 전·월세 공급자와 수요자 간에 전보다 높은 가격에라도 기꺼이 계약을 맺을 의사가 있다는 시장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집주인은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어 종전의 전세보증금으로는 당초 원하던 이자수익을 올리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전세금을 올리려는 동기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반면 세입자의 경우 향후 집값 상승 기대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빚을 내가며 집을 살 유인은 별로 없다. 괜히 대출을 끼고 집을 샀다가 집값이 하락해 맘고생 하느니 전세보증금을 다소 올려주더라도 전세에 머물고 싶어한다. 전세 공급자와 수요자 간 이런 이해가 맞아떨어져 전셋값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나쁜’ 집주인의 탐욕 때문에 선량한’ 세입자의 허리가 휜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게 우선이지 당장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무조건 막고 보자는 식의 대책은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많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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