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경제학자 정구현 KAIST 교수의 苦言
'대한민국 성공방정식' 출간
"한국이 성공했던 이유는 성과주의 가치관 때문"
“지난 60년간 한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과주의 가치관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만큼 치열하게 공부하고 부지런히 일했던 거죠.”
최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난 60년과 향후 15년, 대한민국의 성공방정식은 여전히 유효한가’란 책을 낸 정구현 KAIST 초빙교수(사진)의 말이다. 연세대에서 25년간 경영학 교수로 있다가 삼성경제연구소장을 역임한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맞고 있는 위험이 이런 가치관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경제민주화 등으로 정부 개입이 늘어나면서 한국의 성과주의 가치관이 타격을 받는 상황이에요. 지금 한국 경제에 가장 시급한 일은 이런 성과주의 문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정치와 경제제도를 정립하는 겁니다.”
정 교수는 앞으로 15년간 한국 경제가 세 가지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급성장 △인구 고령화 △북한의 체제 불안정이 그것이다. 그는 “일본이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20여년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실패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이런 큰 도전을 앞에 두고 정치권과 정부는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해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입법과 규제를 양산하고 있다”며 “한국 경제의 60년 성공방정식은 앞으로 가동이 정지될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 경제를 전면적으로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빠른 모방자’ 전략으론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슬로건이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창조경제를 지원한다는 정책은 애초에 말이 안되는 것”이라며 “기업의 창의력은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과 이윤동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잘 놀게 하려면 엄마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어야만 한다”며 “정부의 지나친 지원은 자칫 민간의 창의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연구개발(R&D)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보다 질적으로 성과를 끌어올릴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R&D 예산을 2017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R&D 비용의 70% 이상을 민간기업이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투자목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R&D는 다다익선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벤처패자부활제 등 실효성 있는 재창업 지원제도를 정비하는 등 인프라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 정부가 모순된 정부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정부의 정책 목표가 양립하기 힘든 것이란 얘기다. 그는 “모순되는 과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경제활성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균형 있는 성장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중소기업 문제는 경제정책보다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경제의 효율성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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