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씨의 첫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출간
좋은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특정한 한 장면을 포착했음에도 온 세상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한 울림을 받게 된다. 잘 쓰여진 단편소설도 마찬가지다. 짧은 분량에도 단편소설이 갖는 매력은 인간이 사는 세계의 모습을 한순간에 감각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손보미 씨(사진)의 첫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 단편집에는 지난해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폭우’를 비롯해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담요’, 이와 한 쌍을 이루는 ‘애드벌룬’ 등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폭우’에는 두 쌍의 부부가 나온다. 한쪽은 교양을 갖추지 못한 데다 남편이 실명하는 불운까지 겹친 부부고, 다른쪽은 교양과 재력을 갖췄지만 불신과 오해로 가득 찬 한 쌍이다.
작가는 언뜻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부부의 삶을 각각 서술하다가 이들이 겹쳐졌을 때 벌어지는 비극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통해 계급과 계급, 개인과 개인이 떨어져 있지 않은 세상을 보여준다.
연작이라 할 수 있는 ‘담요’와 ‘애드벌룬’은 이 소설집의 처음과 끝에 배치돼 있는데,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서로 다른 우주를 살아간 ‘장’과 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억마저 엇갈리는 이들 부자를 통해 겹쳐지지 않고 여러 기억 속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세상에 대해 말한다.
손씨 작품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소설가 은희경이 “세련되고 치밀하면서도 모든 걸 다 말해주지 않는 조용한 비밀의 분위기”라고 평한 ‘기묘함’이다. 보통의 소설이 작가가 개입해 독자와 작품을 연결한다면, 그의 소설은 작가가 아예 사라짐으로써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한다.
손씨는 ‘작가의 말’에서 “태어나서 두 번째로 쓴 소설을 읽은 선배는 내게 진정성이 없다고 말했다”고 고백한다. 소재에 대한 취재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소재를 치밀하게 묘사하는 ‘디테일’보다는 전체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듯한 작품의 울림이 손씨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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