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법, 경제민주화 대상 아니다

입력 2013-08-11 17:29
수정 2013-08-11 22:12
"집중투표제·집행위원 강제화 등
경영권 흔들거나 투자유치 '발목'
경제, 민주화보다 활성화가 시급"

전삼현 숭실대 법함과·교수 기업법률포럼 대표



최근 경제민주화법의 마침표가 마치 법무부의 상법 개정인 것처럼 여론몰이가 한창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하면 ‘사법(私法)의 공법화(公法化)’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전문가가 우려하고 있다. 사법의 공법화란 경우에 따라서는 사적인 권리를 과도하게 법으로 통제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사회주의로 전환시키는 단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상법 개정은 경제민주화와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우리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경제민주화의 실천수단으로 ‘적정한 소득분배’ ‘경제력 남용의 방지’ ‘경제주체 간 조화’를 열거하고 있다. 즉, 이번 상법 개정안의 핵심내용인 기업지배구조 관련 대주주와 소수주주 간의 이해상충 방지는 헌법규정상 경제민주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상법 개정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해하고 이를 추진하는 것은 출발부터가 잘못된 입법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상법 개정의 주된 내용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들의 집행임원제도 강제화,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집중투표제도 실시 강제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감사위원 분리 선임 강제화 등이다.

우선, 집행임원제도 강제화는 현행 이사회의 업무집행권을 박탈하면서도 책임은 그대로 유지토록 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는 직접투자 주주들의 투자유인을 억제하는 것으로써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에 정면 배치됨은 물론이고 향후 투자억제로 인한 자본시장 위축의 주범이 될 수 있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은 모회사의 소수주주들이 자회사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자회사 소수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앞으로 중소기업들의 자금조달에 상당한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또 집중투표제 실시 강제화는 외국인 주주가 많은 상장기업의 경영권을 불안하게 해 한국 자본시장을 외국자본의 ‘먹튀 천국’으로 전락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감사위원의 분리선임 강제화는 상장회사들의 경영권 분쟁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국내 기업들의 상장 회피 또는 왜소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집중투표제 실시와 감사위원 분리 선임 강제화는 한국보다 100년 이상 앞서 산업화한 선진 각국의 회사법제들이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법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경영권 안정이라는 회사법적인 가치를 전면 부인하는 ‘사법의 공법화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말 현재 한국 기업 전체 주식에 대한 외국인 비율은 33.3%에 이르렀다. 특히 삼성전자(49.17%), 현대차(43.78%), 포스코(51.41%), SK텔레콤(44.77%), KT&G(59.64%), NHN(53.83%) 등 국내 주요기업 상당수는 외국인 지분이 절반에 육박하거나 초과한 상태다. 이는 이번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2003년부터 약 3년간 SK 경영권을 위협하면서 약 1조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먹튀 소버린’ 사태를 경험한 바 있다. 이는 각론 차원에서 보면, 특정 개인이나 회사의 잘못으로 전가할 수 있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총론적으로 보면, 경영권 방어를 불법으로 단정하고 있는 한국 회사법제의 결함 역시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외국인 자본비율이 높은 기업을 대상으로 경영권 방어를 합법화하기보다 오히려 이들의 경영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이번 상법 개정안은 분명 문제가 있다. 더욱이 이번 상법 개정안처럼 ‘사법의 공법화 현상’이 현실화된다면 우리 회사법제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이는 외국의 직접투자, 즉 비투기성 투자도 억제해 우리 자본시장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제 민주화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상법 개정이 더 시급한 시기다.

전삼현 < 숭실대 법함과·교수 기업법률포럼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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