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노믹스 - '설국열차' 통해 본 '인구론'의 한계
'앞쪽칸'의 지배층, 학살 명분 만들려 일부러 반란 유도
'꼬리칸'의 피지배층, 바퀴벌레로 식사…탄압 맞서려 반란
“아, 18주년 기념으로 18명 더 살려주도록!”(윌포드)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인류는 기온을 낮춰주는 화학 약품 CW-7을 만든다. 79개국 정상들이 CW-7을 살포하기로 결의하고 온 지구에 약품을 뿌리지만 부작용으로 인류는 새로운 빙하기를 맞이하게 된다. 모든 세상이 꽁꽁 얼어버린 2031년, 인류는 17년째 거대한 기차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이 기차는 CW-7의 부작용을 예상한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가 만든 것으로 세계에 걸친 43만8000㎞ 철로를 따라 1년에 지구를 한 바퀴씩 돌고 있다. 윌포드는 이 설국열차의 1인자로 부유층이 탑승한 머리칸부터 무임승차자들이 있는 꼬리칸까지 열차 전부를 지배한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최신작 ‘설국열차’의 설정이다. 영화는 꼬리칸 최하층민이 커티스(크리스 에번스 분)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켜 윌포드가 타고 있는 엔진룸까지 전진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꼬리칸 주민의 반란은 이들을 향한 차별과 탄압에 맞서기 위한 행위다. 이들은 열차에 무임승차했다는 이유로 맨 뒤칸에서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는 처지다. 앞쪽에 사는 사람들이 갓 잡아올린 생선으로 만든 초밥과 신선한 과일 등을 먹는 반면 꼬리칸 주민은 바퀴벌레를 갈아 만든 단백질 블록으로 끼니를 때운다.
균형과 질서 유지를 위한 학살
이 영화의 잔인한 반전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열차 한 칸씩 나아갔던 그 모든 행위가 열차의 존속을 위해 유도된 행동이었다는 점이다. 커티스는 마침내 100칸의 기차를 지나 윌포드가 살고 있는 마지막 엔진룸에 도착한다. 하지만 정작 윌포드는 여유롭게 스테이크를 구우며 커티스를 맞는다. 어리둥절한 커티스에게 윌포드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열차 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정 주기마다 꼬리칸의 사람들을 학살해 왔다는 것. 지금까지 일어난 수차례의 반란은 학살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조작된 것이었다. 꼬리칸 지도자였던 길리엄(존 허트 분)은 윌포드와 수시로 연락하며 기차 내 상황을 조정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충격에 빠진 커티스를 뒤로하고 윌포드는 꼬리칸 부하들에게 꼬리칸 주민의 74%를 죽일 것을 명령하며 여유롭게 한마디 덧붙인다. 전날 기차 운행 18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해 예정보다 18명을 더 살려주라고 말이다.
정기적인 학살의 가장 큰 이유는 적정인구 유지다. 설국열차는 극도로 제한된 공간이다. 사람들은 101칸에 불과한 기차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공간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이뤄진다. 면적이 제한된 탓에 생산되는 자원도 많지 않다. 기차 안의 인구수가 일정 선을 넘어서는 순간 물자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윌포드는 정기적으로 꼬리칸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해 균형을 맞춰나가고 있는 것이다.
인구는 기하급수,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
영화 속 상황은 영국의 목사이자 초기 경제학자인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1766~1834)의 상상을 디스토피아적으로 뒤틀어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맬서스는 ‘인구론’을 쓴 사람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사회의 부양 능력은 끊임없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 인류는 빈곤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측을 내놓았다.
맬서스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식욕과 성욕으로 미래를 예측했다. 인간의 성욕은 강하고 이를 제약하는 것은 많지 않기 때문에 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반면 인간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식량은 자연적 환경에 의해 제한된다. → 맬서스 인구론의 핵심
물론 인위적으로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혼인 연령을 늦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맬서스는 인간의 성욕이 아주 강력하다고 봤다. 인구 억제를 통해 일반 대중의 생활 수준을 최저생계 수준보다 높게 올려놓으면 다시 무절제한 성욕이 고개를 들어 인구가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맬서스는 “빈곤을 줄이려는 자선단체나 정부의 시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녀를 더 많이 낳게 만들어 사회 생산 능력에 더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비생산적”이라고까지 했다. 워낙 주장이 파격적이었던 탓에 인구론 초판은 익명으로 출판됐다고 한다.
기술 진보에 대한 과소평가가 오판 불러
맬서스가 이처럼 음울한 미래를 내다본 것은 아무리 많은 자원을 투입해도 늘어날 수 있는 식량의 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정 면적의 밭에서 10명이 1의 작물을 거둘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땅의 크기가 변하지 않을 경우 사람을 10명 더 늘린다 하더라도 수확량이 2배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생산성 증대에는 노동량 투입도 중요하지만 지력 향상과 기술 수준의 발달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력과 기술은 단기간에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노동투입만으로는 2배의 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프1>에서 보듯 노동투입량을 L0에서 L1로 늘려도 AP0 곡선을 따라갈 경우 늘어나는 생산량은 Y0에서 Y1으로 조금밖에 올라가지 않는다. 맬서스는 이를 ‘수확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returns)’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다행히도(?!) 맬서스의 예측은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맬서스가 상상한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200년 동안 세계 인구는 약 6배로 늘어났지만 식량 생산량은 훨씬 더 큰 규모로 불어났다.
잘못된 예측의 주된 원인은 기술 진보에 대한 과소평가다. 살충제, 비료, 영농 기계, 새로운 품종 개발 등 기술이 발달하면서 농부 한 사람의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똑같은 노동량을 투입하더라도 기술 발전 덕택에 그래프 곡선이 AP0에서 AP1으로, 다시 AP2로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맬서스 예측이 빗나간 이유
열차 탈출이 재앙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
만약 커티스의 반란이 성공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장은 꼬리칸 주민의 삶이 훨씬 나아질 것이다. 앞칸에 극단적으로 편중됐던 부가 이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위적 인구 조절도 없기 때문에 열차에 사는 사람 역시 증가할 것이다. 기술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 머무르는 이상 이들의 앞날에는 파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상황이다. 때문에 커티스도 윌포드에게 기차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파국을 막는 유일한 길은 열차의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 분)가 제안한 열차 탈출 밖에 없어 보인다. 그는 엔진룸으로 들어가는 입구 안에서 커티스에게 “나는 이 문(엔진룸으로 가는 문)이 아니라 이 문(기차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싶어”라고 소리지른다. 매년 눈이 조금씩 녹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문을 폭파하기 위해 폭발 물질인 환각제 ‘크로놀’을 모아왔고 결국 문을 폭파한다. 하지만 폭파로 인해 눈사태가 일어나면서 기차는 전복되고 남궁민수의 딸인 요나(고아성 분)와 티미만이 살아남는다. 눈이 녹고 있고 생태계가 복원됐음을 상징하는 북극곰 한 마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일단은 인구론의 악몽에서는 탈출한 셈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시네마노믹스 자문 교수진 가나다순
▲송준 교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이창민 교수 한양대 경영학과
▲ 정재호 교수 고려대 경영학과
▲한순구 교수 연세대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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