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시장의 유령 '팬덤'이 소비자를 뒤흔들고 있다

입력 2013-08-08 17:06
수정 2013-08-08 23:16
팬덤의 경제학
제레미 D 홀든 지음 / 이경식 옮김 / 책읽는수요일 / 380쪽 / 1만5000원



1999년 개봉된 영화 ‘블레어 윗치’는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억5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영화 줄거리는 영화학도 세 명이 메릴랜드의 블랙힐스 숲에서 18세기에 실종된 사람의 유령인 ‘블레어 윗치’를 찾아 들어갔다가 실종됐고, 이후 1년 뒤 이들이 찍은 영상이 우연히 발견돼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5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든 페이크 다큐멘터리(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허구의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가공한 영화) 공포영화가 어떻게 제작비 2억달러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같은 영화와 경쟁하며 대박을 터뜨렸을까. 누리꾼들로 하여금 기업이나 제품에 관한 소문을 자발적으로 퍼뜨리게 하는 바이럴 마케팅 덕분이다. 가상의 블레어 윗치 신화가 1998년 여름에도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웹사이트(블레어윗치닷컴)를 만들어 이를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입소문을 퍼뜨렸던 것. 블레어 윗치 신화의 광신자들이 하루 300만건씩 이 사이트를 조회하자 다수의 신봉자가 생겨났고, 이들은 더욱 폭넓은 신도 대중을 끌어들였다.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퍼블리시스 카플란 탈러의 브랜드·마케팅 최고전략책임자인 제레미 D 홀든은 《팬덤의 경제학》에서 이런 사례를 들려주며 ‘팬덤’이라는 새로운 유령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어떤 상품은 신드롬을 일으키며 메가히트 상품이 되는 반면 어떤 브랜드는 승승장구하다 한순간에 소비자들의 배신으로 시장에서 퇴출된다. 허술한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자격 미달 후보가 당선되기도 한다. 소비자는 쏟아지는 정보를 이성적으로 종합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정보만을 수용하고 편집하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을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들 것인가. 저자는 혁신론자인 에버렛 로저스가 혁신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다섯 집단으로 분류한 혁신수용곡선을 소셜 미디어 환경에 맞춰 광신자-신봉자-신도 세 집단으로 새롭게 구분하면서 ‘사회적 계약’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어떤 집단의 감정상태가 고조돼 있을 때 기업이나 제품, 유명인 등에 대해 형성되는 대중의 인식이나 기대가 사회적 계약이다. 이런 계약이 형성되는 방식과 이것이 열성적인 광신자들과 단호한 신봉자들, 보다 많은 신도 집단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선보인 ‘현대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다. 현대차를 할부로 산 고객이 구매일로부터 1년 이내에 실직해서 할부금을 낼 수 없거나, 자영업자인데 파산하거나, 다쳐서 장애인이 되는 등의 경우 차를 돌려주기만 하면 되도록 한 것. 크라이슬러나 GM 같은 회사들을 살리기 위해 미국 정부가 막대한 공적 자금을 쏟아부을 때 자동차 구매의 진짜 장벽은 가격이 아니라 실직의 두려움임을 꿰뚫어본 현대차의 통찰이 돋보인 조치였다. 저자는 현대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 단순한 판촉 기법을 넘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회사라는 인식, 즉 ‘사회적 계약’을 형성했고 이후 북미 시장을 확대하는 팬덤을 확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핀란드의 작은 게임회사 로비가 만든 앵그리버드의 성공 비결,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팀 쿡이 이끄는 애플이 지난해 4분기 최고의 실적을 냈는데도 여전히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등 다양한 사례 분석도 제시한다. 아울러 최고경영자들이 대중의 감정과 열정, 기업에 대한 헌신을 이해하며 가치관을 실현시켜 주는 최고감정책임자(Chief Emotion Officer)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애플이 제품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신봉자를 거느리는 매력적 브랜드가 된 것은 대중의 감정을 좌우하는 최고감정책임자, 스티브 잡스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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