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커피
조선 최초 美 유학생 유길준 "커피는 서양의 슝늉 같은 것"
고종황제도 즐겨 마셔
“서양 사람들은 커피를 우리나라에서 숭늉 마시듯 마신다.”
1895년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었던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문장은 한국인이 커피에 대해 남긴 첫 번째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략 이때를 전후한 1890년대로 추정된다. 당시엔 한자음을 따 ‘가비’라 불렀고, 검은색과 쓴맛이 한약과 비슷하다 해서 ‘양탕국(서양의 탕국)’이라 하기도 했다. 고종 황제는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인, 하루 1.5잔 마신다
낯설고 신기한 서양 문물이었던 커피가 120년 남짓 지난 지금은 한국인의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으로 위상을 굳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1년 커피 수입량은 12만3029(6억6800만달러)이다. 하루에 300씩 소비한 셈인데, 이는 에스프레소 3700만잔을 뽑아낼 수 있는 양이다. 국내 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 국민 중 노동 능력과 의사가 있는 인구)를 2400만명으로 잡으면 1인당 매일 1.5잔꼴로 커피를 마신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은 83개국에서 커피 원두를 수입했다. 베트남(38%), 브라질(15%), 콜롬비아(11%)가 전체 수입 물량의 64%를 차지했다. 이들 ‘빅3’의 순위는 2004년 이후 바뀌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수입하는 커피의 88%는 원두 형태로 들어온다. 프리미엄급 커피에 익숙해진 소비자 취향을 감안하면 고급 원두 수입량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10잔 중 4잔은 사무실에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 늘어나는 속도는 ‘놀랍다’고 표현할 만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국의 커피전문점 수는 2006년 1254개에서 2011년 1만2381개로 5년 만에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커피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에스프레소 머신도 급속히 대중화되고 있다. 에스프레소 머신 수입액은 2006년 1160만달러에서 2011년 5590만달러로 5년 만에 4.8배 증가했다.
커피 소비가 고급화하는 가운데서도 아직 국내 커피 시장을 꽉 잡고 있는 것은 믹스커피다. 동서식품에 따르면 잔수를 기준으로 국내에서 소비되는 믹스커피는 연 150억잔으로 커피전문점(11억잔)을 압도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커피를 가장 많이 마시는 장소로는 사무실(40%)과 가정(26%)이 꼽혔다. 직장 동료나 가족과 함께 간편하게 커피를 타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특성 때문에 믹스커피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커피잔은 시대상도 담아낸다
커피를 소비하는 방식에는 시대 흐름이 반영된다. 1990년대까지 국내 커피 시장의 대세는 프림과 설탕을 타서 마시는 형태인 ‘솔루블 커피’였다. 비율을 얼마나 잘 배합하느냐가 일종의 능력으로 통했고, 여성들의 ‘커피 심부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때이기도 하다.
1997년 외환위기는 솔루블 커피의 인기가 꺾이고 믹스커피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구조조정 칼바람으로 냉랭해진 회사 분위기 때문에 커피 심부름을 부하 직원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타 마시는 문화가 형성됐다는 게 업계에서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통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커피전문점이 빠르게 늘면서 고급 원두커피 소비가 급증하는 추세다. 수년 전 인터넷에서 ‘된장녀’ 논쟁이 불붙었던 데서 보듯 일부 소비자는 한동안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커피전문점은 고급스러운 커피 맛과 편안한 분위기를 무기로 젊은 층을 파고들었다.
식약처는 하루에 에스프레소 넉 잔 분량 이상으로 커피를 마시지는 말라고 권고한다. 성인 기준 하루 카페인 권장량은 400㎎인데, 에스프레소 한 잔(원두 8ｇ)에는 평균 100㎎의 카페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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