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年10만弗 연금 퇴직자만 2만명
뉴욕은 연금 수급자가 현역 경관보다 많아
공무원 노조 반발에 연금 구조조정 미적미적
미국 오클랜드시는 작년에 살인 및 절도 건수가 전년 대비 25% 늘었는데도 지난달 경찰관을 100여명 줄였다. 퇴직 공무원에게 지급할 연금 재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걸로도 모자라 시는 2억달러를 차입했다.
필라델피아 역시 사정은 비슷해 한 해 예산의 20%를 퇴직 연금 지급에 쓰고 있다. 지난달 디트로이트시를 파산으로 몰고 간 부채 182억달러 중 절반이 넘는 92억달러는 공공 부문 근로자에 대한 연금 지급을 위해 마련된 공공연금 펀드에서 발생한 것이다.
미국 지방자치단체의 과도한 공공 연금 부담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자그마치 2조7000억달러(약 3020조원)의 공적 자금이 공공연금 지급에 사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어디서든 제2, 제3의 디트로이트 파산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연금 부담에 등골 휘는 美 지자체
고용주가 퇴직자의 연금 및 건강보험료 지급을 책임지기로 한 1950년 디트로이트 협약 이후 미 지자체장들은 앞다퉈 비슷한 복지혜택을 공공 부문 근로자들에게 약속했다. 퇴직 시점의 급료 상당 부분을 은퇴자가 사망할 때까지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이후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민간 부문에서는 근로자의 20%에만 적용되는 제도가 공공부문에서는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때문에 캘리포니아주에서만 연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보장받는 퇴직자가 2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연금펀드는 부실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스턴대 퇴직연구센터는 미국 공공 연금펀드의 27%가 부실화됐으며 매년 지급액의 20%는 빚을 내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지급을 보증하며 빚을 얻어야 하는 지자체들은 죽을 지경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일리노이주 공공연금펀드의 연간 세수 대비 부채비율이 241%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2년간의 세수를 모두 쏟아부어도 빚을 다 갚지 못한다는 의미다. 코네티컷 등 9개 주도 해당 비율이 100%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평균 수명이 늘면서 연금펀드 부실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2004년 디트로이트 공공연금 가입자 중 현역 공무원은 51%였지만 2011년에는 해당 수치가 역전돼 퇴직자가 61%에 이르렀다. 연금을 납입하는 현역 직원 한 사람당 2명의 퇴직자가 연금을 타가는 셈이다. 뉴욕에서도 지난해 처음으로 경찰관 연금 수급자 수가 현역 경관 수를 넘어섰다.
◆과거의 표 위해 희생된 현재
연금에 대한 부담이 늘면서 공공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 10년간 공공 연금펀드 관련 예산 지출이 2배로 늘면서 교육에 대한 투자는 줄었다. 한 카운티는 최근 3년간 1억달러를 소방관 연금펀드에 추가 지출했지만 소방 인프라는 오히려 퇴보했다.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한 과거의 약속 때문에 현재의 납세자들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각 지자체는 연금 구조조정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노조 등의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미국 법원이 연금 지급 규정을 지자체와 개인 간 계약으로 간주해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에 처한 지자체들은 디트로이트 사태의 해결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비상 관리인으로 선임된 케빈 오어 변호사가 회생을 위해 채권자는 물론 연금 수급자들에게도 손실 분담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재정 분담을 줄이기 위해 연금 지급을 감축하는 회생계획안이 법원에서 승인되면 자자체의 파산을 전제로 공공 연금을 개혁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여기에 공무원노조 등이 “연금 지급을 하지 않기 위해 파산제도를 이용하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법정 공방은 최소 1년 이상 지속될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파산을 통해 연금 지급을 줄이는 것이 가능해지면 ‘디트로이트 스타일’의 지자체 파산 신청이 쇄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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