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은행 떠나 MMT·헤지펀드로…'기업 여윳돈' 수익률 좇아 대이동

입력 2013-08-05 17:15
수정 2013-08-06 02:55
기업 '재무 포트폴리오' 다시 짠다
투자할 곳 없는데 저금리까지…'재테크 경영' 나선 기업

금리 사실상 '마이너스'…은행에 넣으면 '손해'
MMT 잔액 112조원…올들어 9조원 증가
보수적 자금운용 아모레도 증권상품 투자


▶마켓인사이트 8월5일 오후 3시40분


화학을 주력으로 하는 A그룹은 올 들어 여유자금 운용 포트폴리오를 새로 짰다. 은행 예금 등에 맡겨놨던 여유자금 3000억원 중 올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온 500억원가량을 금융상품에 투자했다.

150억원가량은 ‘롱쇼트 전략’(주가 상승이 예상되는 주식은 사고, 하락이 예상되는 주식은 공매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헤지펀드에 가입했고, 50억원은 주식형 펀드에 넣었다. 코스피지수와 S&P500지수에 연동되는 원금비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도 100억원어치나 샀다. 나머지 200억원가량은 연 5% 안팎의 이자를 챙길 수 있는 회사채와 원금보장형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했다. 여인모 삼성증권 강남법인그룹장은 “저금리에 따른 수익률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A그룹에 보다 공격적인 자금운용을 조언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여유자금을 은행 예금 대신 증권사의 특정금전신탁(MMT), ELS, 주식형펀드, 헤지펀드 등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에 투자하고 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현금보유액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은행 예금금리가 연 2%대로 추락하자 여윳돈의 운용수익률을 끌어올리는 ‘재테크 경영’에 나선 것이다.

○증권사 MMT 잔액 올 들어 9조원 증가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MMT 잔액은 111조7927억원으로 작년 말(102조5606억원) 대비 9조2321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기업들의 은행 예금 잔액은 302조9696억원에서 302조9711억원으로 15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MMT란 고객이 맡긴 돈을 기업어음(CP) 회사채 등에 투자해 운용하는 상품이다. 금리는 연 3%대 초반(1년물 기준)으로 연 2.8% 수준인 1년 만기 은행 정기예금보다 높다.

현대자동차는 이런 점을 감안해 여유자금의 상당 부분을 MMT에 넣은 데 이어 주식·채권 혼합형펀드에도 가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적인 자금 운용으로 잘 알려진 아모레퍼시픽도 작년 하반기부터 만기가 돌아온 은행 예금을 MMT 등 증권사 상품으로 바꿨다. SK하이닉스도 몇몇 증권사에 MMT 가입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견기업 중에는 보다 공격적으로 여유자금을 굴리는 업체도 있다. 고려아연은 올 1분기 ELS에 202억원을 투입하며, 전체 ELS 투자잔액을 700억원에서 902억원으로 끌어올렸다. 유한양행은 작년 하반기 브라질 국채에 100억원을 투자했다. NHN 넥슨 대교그룹 세방전지 등도 여유자금 일부를 원금보장형 ELS, 우량기업 회사채 등에 투자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채권형펀드에만 소액을 맡겼던 삼성전자가 증권 상품 투자를 검토하는 등 ‘여윳돈 재테크’가 재계의 화두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쌓이는 현금… 은행에 넣으면 손해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여유자금이 생기면 관행적으로 은행에 묻어뒀다. 원금 손실 우려가 없는 데다 향후 대출이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평소 주거래 은행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연 1%포인트 이자를 더 받기 위해 은행을 버리고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건 재무담당자들 사이에선 ‘미친 짓’으로 통했다.

이랬던 기업들의 여유자금 운용방식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작년 5월 연 3.91%였던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지난 6월 연 2.82%로 주저앉으면서 물가상승률과 세금을 뺀 실질 금리가 사실상 ‘마이너스’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저금리로 돈 굴릴 곳을 찾기 힘들어진 은행들이 우대 금리를 줘야 하는 기업들의 거액 예금에 손사래를 치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는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12월결산 법인(금융회사 제외)의 순이익 규모는 2011년 43조1641억원에서 지난해 44조6940억원으로 늘어난 반면 기업 설비투자 규모는 같은 기간 2.0% 줄었다. 이러다 보니 주요 기업의 여유자금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상장기업들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는 지난 1분기 141조원으로, 작년 말(126조원)보다 15조원가량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20조원의 여유자금(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단기매도가능증권)을 보유한 현대차의 경우 이자를 연 0.1%포인트 더 주는 곳으로 갈아타기만 해도 200억원의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기업 재무팀의 ‘스타’가 ‘돈을 잘 빌려오는 사람’에서 ‘돈을 잘 굴리는 사람’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온 셈”이라고 말했다.

김동윤/오상헌/심은지/이유정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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