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이폰3, 아이패드 등 삼성전자의 통신 특허를 침해한 애플사 제품의 미국 내 수입과 판매를 금지하는 무역위원회(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일은 충격적이다. 미국 대통령의 체면을 망각한 행동이며, 미국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드는 부당한 결정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미국 내 경쟁 환경과 소비자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밝혔지만 근거도 없고 옹색하며 누가 뭐래도 보호무역주의라는 것은 명백하다. 특허침해를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국 이기주의라는 점에서 그동안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세계 경찰을 자임해온 미국의 권위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조치임이 틀림없다.
삼성전자는 “ITC의 최종 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준 사법적 기구인 ITC가 결정한 일이 뒤집혔다는 점에서 백악관의 보다 구체적인 설명도 필요하다. 미국 정부가 반덤핑 등 불공정한 교역을 막기 위해 1973년에 설립한 기구가 ITC다. 그동안 ITC는 반도체 카메라 타이어 등 수많은 상품 분야에서 외국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와 특허 침해를 조사하고 단호하게 미국 내 판매금지 조치를 내려왔다. ITC 판정 때문에 미국 수출의 꿈을 접은 해외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ITC는 2011년 8월부터 2년간이나 애플의 삼성전자 특허 침해여부를 조사 분석한 끝에 지난 6월 판매금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중대한 결정을 부인해버린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른바 표준 특허를 남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잠재 부작용을 우려했다는 것이지만 이 역시 근거가 없다. 표준 특허를 특허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떤 기업도 혁신적 제품 개발에 나서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어제 자 기사에서 “미국이 국제무역에서 그토록 중시하던 지식재산권을 뒤엎음으로써 앞으로 엄청난 리스크를 지게 됐다”고 경고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평가다.
미국은 국제적 규칙을 선도하는 룰 메이커로 자처해왔다. 그런 리더십이 이번 일로 치명적 손상을 입을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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